예술의 기(氣)가 특정한 시간대에 쏠려 있다고 믿는 것은 미신일 것이다. 그러나 한국의 현대 문학사는 11년의 차이를 두고 몇 개의 연도에 재능있는 문인들이 몰려서 태어난 우연을 기록하고 있다.그 첫 연도는 태평양전쟁이 발발한 1941년이다. 이 해를 전후로 태어나 4.19에 즈음하여 성년에 이른 세대는 자신들을 `한글 세대'로 자부하며 한국 문학의 새 지평을 열었다. 시인 김지하 이성부 조태일 오규원, 소설가 김승옥 박태순 송영 김주영 김원일 박상륭 이문구, 비평가 염무웅 김현 김주연 김치수 등이 이 세대에 속한다. 그 앞 세대와는 달리 일본 문화의 압력에서 자유로웠던 이 `41년 세대'에 의해서 한국 문학은 근대성을 향한 긴 장정의 시동을 걸었고, 그 장정의 베이스 캠프인 `창작과 비평'과 `문학과 지성' 두 계간지가 만들어졌다. 이들은 지금도 왕성한 활동을 벌이며 한국 문단의 우이(牛耳)를 쥐고 있다.
두번째 연도는 6ㆍ25의 포연이 자욱하던 1952년이다. 이 해를 전후로 태어나 유신체제 선포를 전후해 성년에 이른 세대는 박정희와 전두환의 연이은 폭압 정권에 정면으로 맞서거나 자신의 내부로 망명하며 제 나름의 방식으로 앞 세대의 문학적 유산을 불렸다. 시인 황지우 이성복 이윤택 김승희 최승자 김정란 김정환, 소설가 이인성 임철우, 평론가 김철 진형준 권오룡 등이 이 `정치적 상상력'의 세대에 속한다. 20대에서 30대 중반까지 자신들 삶의
가장 생기있는 시기를 군사 파시즘에 압수당했던 이 불행한 `52년 세대'는 한국 문단의 허리라고 할 수 있다.
세번째 연도는 박정희 정권의 개발 독재가 막 시작되던 1963년이다. 이 해를 전후로 태어나 전두환 정권 초기에 성년에 이른 세대는 자신들의 문학적 이력이 시작될 즈음 한국의 민주화와 동유럽 사회주의 체제의 몰락이 동시에 시작되는 기묘한 상황을 목격했다. 시인 유하 함성호 박용하 함민복 허수경, 소설가 김소진 김인숙 공지영 신경숙 공선옥 주인석, 평론가 권성우 이광호 등이 이 세대다. 이 리스트에 진중권 김종엽 이진경 정준영 같은 63년생의 문화 평론가들의 이름도 기입할 수 있겠다. 이 `63년 세대'는 6.25 이후 자신이 사회주의자라는 것을 두려움 없이 말할 수 있게 된 첫번째 세대이자, 그 사회주의에 대한 선망에서 완전히 자유롭게 된 첫번째 세대이기도 하다.
이런 밋밋한 등차 수열이 그 뒤로도 우연히 지속됐다면, 문학적 재능이 무더기로 태어났을 네번째 연도는 1974년일 것이다. 이 해에 태어난 사람들은 올해로 만 스물여섯 살에 이르렀다. 문학적 이력이 시작될 나이다. 문민 정부의 출범과 함께 성년에 다다른 이 `74년 세대'가 11년 주기의 문학적 개화라는 신화를 지속시킬지 아니면 깨뜨릴지 한번 호기심으로 지켜보자.
편집위원 aromachi@hk.co.kr
그래픽 맡겼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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