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 그림 속의 서양화법이성미 지음ㆍ대원사 발행
“가까이 보니 그림이었다. 그러나 열 발자국쯤 떨어져 서서 보니 그것은 분명 살아있는 개였다. 문짝의 안이 무척 깊고 멀게 보여 마치 벽이 비쳐 보이는듯 하기도 하며 매우 경이롭게 보였다.”
1720년 이기지(李器之)가 청나라 수도 연경(燕京)에서 천주당 벽화를 보고 기록한 소감의 한 대목이다. 그 벽화는 동양 회화와 뚜렷이 구별되는 서양화였다. 원근법, 입체감의 표현, 인물과 동물의 생생한 사실적 묘사로 인해 생기는 서양화의 `3차원적 눈속임'은 조선의 지식인에게 실로 충격이었다. 이 충격이 조선 후기 회화에 뚜렷한 흔적을 남겼던 것이다.
`조선시대 그림속의 서양화법'은 바로 조선 후기 회화에 미친 서양화법의 영향을 논구한 책이다. 서양 미술과의 접촉은 17세기 후반 청으로 파견된 연행사(燕行使)들을 통해서 이뤄졌다. 그들은 연경 천주당의 건축양식, 내부를 장식한 벽화와 천장 그림 등에서 받은 느낌을 생생하게 기록해 조선에 전했고, 이러한 서양 회화와의 접촉이 초상화, 인물화, 영모화, 산수화 등에서 원근법과 입체감을 유발시키도록 자극했다고 저자는 밝히고 있다.
하qm 만, 강세황 등을 제외한다면 그 수용 양상이 근본적인 회화관을 바꿀만큼 적극적이지는 않았다. 저자는 19세기 전반기 서학을 탄압하면서 사회 전반에 인 복고운동과 아울러 서양문물을 접했던 당사자들이 화가가 아니었다는 점이 그 큰 이유였다고 설명한다.
저자 이성미씨는 덕성여대 교수와 미술사학회 회장을 역임했고, 현재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로 재직중이다. 100여 컷의 풍부한 사진과 이익, 정약용, 박지원, 홍대용 등 실학자의 글을 통해 조선 후기 회화의 한 국면을 흥미롭게 살필 수 있는 책이다. 대원사. 1만 4,000원.
/송용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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