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만난 탤런트 최수종(38)은 늘 10Kg이 넘는 갑옷 차림에 분장한 모습이었다. 경북 문경의 KBS 사극 `태조왕건' 야외세트장과 여의도 스튜디오에서 만난 그는 항상 긴장해 있으면서도 씩씩한 표정이었다. 18일 촬영장 밖에서 다시 만난 그의 검게 그을은 얼굴과 면바지, 티셔츠 차림이 오히려 낯설다.요즘의 최수종은 `태조왕건' 시사회가 끝난 후 가진 간담회 때와 사뭇 다르다. 자신감에 차 있다. “드라마에서 접하기 힘든 고려사를 다루는데다 조선 왕조만을 다룬 사극에 길들여진 시청자들에게 최수종식 왕건을 창조해야하는 부담감이 너무나 크다.”
방송 초반에 그는 참기 힘든 아픔도 겪었다. 4월 1일 첫방송 이후 두달 동안 강력한 남성성을 드러내며 외양만큼이나 언론과 시청자의 관심을 끈 궁예 역의 김영철에 눌려 찬사는 고사하고 잘못된 캐스팅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캐스팅이 알려지면서 카리스마가 없고 정형화한 연기를 하는 최수종은 왕건 역이 무리라는 우려가 현실로 나타나는 듯했다.
“ `용의 눈물' 의 유동근 선배처럼 강렬한 인상의 왕에만 익숙한 시청자들이 외유내강형인데다 카리스마가 보이지 않는 왕건 역의 내가 어설프게 보였을 것이다. 드라마가 끝나고 난 뒤의 평가를 받겠다는 심정으[]N~? 튀고 싶은 욕구를 수없이 눌렀다.”
최근 PC통신이나 방송사 시청자 의견에는 최수종의 왕건 연기가 자연스럽고 캐릭터를 잘 소화하고 있다는 칭찬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150회중 58회가 방송돼 중반부에 접어든 `태조왕건' 은 궁예가 권력을 잡아 점차 폭군으로 변하는 과정과 왕건이 덕과 지략으로 세력을 확대하는 과정이 대비되면서 전개되고 있다. 그에게 쏟아지는 찬사의 이면에는 시청자들이 알지 못하는 고통이 있었다.
외모가 안정돼 있어 금강석 같은 정형이라는 지적도 있었지만, 오히려 그런 이미지를 깨뜨려야 했기 때문이다. 출연 섭외를 모두 거절하고 쇼 프로 진행자 자리도 내놓으면서 사극 대사 발성법에서 승마, 활쏘기, 검술등을 익혔고 고려사등 왕건의 체취를 맡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구해서 읽었다.
영하 10~20도에서 입을 뜨거운 물로 녹여가며 대사를 했고, 30도의 날씨에 10Kg이나 되는 갑옷을 입고 전투 장면을 장시간 연기했다.
“1,000여년전 영웅의 마음과 행동을 헤아려 현재의 모습으로 왕건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 버거운 일이었다. 연기생활 19년에 접어드는데다 연기의 전환점에 와 있던 시기에 왕건 역 제의가 들어왔다. 왕건 역은 최선만 다한다면 앞으로 힘들 때마다 나를 바로 잡아줄 수 있는 이정표 같은 구실을 할 것 같았다.”
캐릭터에 대해서는 “작가 이환경선생과 대화를 하고 캐릭터의 분위기와 어투를 결정한 다음, 극본에 충실하면서 자신의 해석부분을 최대한 죽이고 연기하고 있다” 고 말했다.
또 강인한 남성 드라마의 향취가 풍기는 `태조 왕건' 에 남성들의 관심이 몰리고 있다고도 보고 있다. “리더십 ?부재 시대에 살고 있는 요즘, 영웅들의 다양한 리더십 형태를 보여주기 때문에 이 드라마가 관심을 끌고 있는 것 같다.”
오후 8시 30분에 시작된 인터뷰는 밤 12시에야 끝이 났다. 몇 잔의 소주로 얼굴이 불콰해진 그에게서 `태조왕건' 방송 일주일전 둘째딸을 낳은 부인 하희라가 “아이에게 `태조왕건' 을 함께 보자고 자신있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해 달라” 고 한 당부를 잊지않으려는 모습을 보는 듯했다.
배국남기자 knba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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