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딸은 살림 밑천이라는 말이 있듯이 누나는 초등학교를 졸업하고도 중학교에 진학하지 못하고 농사 뒷바라지를 해야했다. 집에서 먼 공동 우물에서 밤잠도 자지않고 우리 가족은 물론 가축들까지도 넉넉히 마시고 남을 물을 길어올 정도로 부지런했다.누나는 놋 주발에 짠 무 장아찌나 고추장을 종지에 담아 도시락을 싸주었는데 그러다보니 장아찌를 먹으면 물만 켰고 고추장은 밥에 벌겋게 흘렀다. 그래서 교실에서 친구들과 같이 먹지 못하고 학교 동산에서 숨어서 먹은 일도 있었다. 한번은 그러다 체해 토끼 사육장에 먹은 것을 쏟아붓기까지 했다. 누나는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다음날도 같은 반찬을 담아주었다.
누나가 해주는 밥을 먹고 초등학교에 다닐 적에는 아무리 공부를 해도 성적이 오르지않아 고민이었다. 어느날 나는 공부를 열심히 하지 않아도 시험을 잘 보는 급우들의 비결이 전과와 수련장 때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집에서 감과 고구마 같은 것을 친구에게 갖다주고 전과를 빌려 밤새 베끼고 다음날 돌려주면서 공부를 했다. 그 결과 책 주인을 제치고 1등을 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내 책이 있어야 겠기에 아버지에게 전과를 사달라고 졸랐다. 책 장수는 닷새에 한번씩 열리는 장날만 마qm 에 왔다. 장날이라도 눈이라도 내리면 오지 않았다. 또 책 장수가 오더라도 아버지가 다른 일 때문에 장에 가지 못하는 경우가 많아 전과 구입은 차일피일 미루어졌다. 어느날 장롱에 붙은 거울을 닦는데 거울이 밀려올라가는 바람에 손이 들어갈 만큼의 구멍이 눈에 들어왔다. 손을 넣어보니 돈 다발이 잡혔다. 나는 전과와 수련장을 살 수 있는 지폐 3장을 꺼내 꼬깃꼬깃 감추어 두었다.
장날 몰래 전과를 사가지고 와 이름도 못쓰고 불안한 마음으로 공부를 하던 중 아버지가 싸리가지를 한다발 들고 오시더니 “도둑이 들면 송두리째 없어질 텐데 꼭 3장이 비는 것은 너희들 소행”이라며 대님을 풀어 누나와 내 발목을 묶은 후 몹시 때렸다. 하지만 내가 “모른다”고 버티자 아버지는 매를 놓으셨다. 그 어린 나이에도 피멍이 들게 맞은 누나의 다리를 바라보면서 성한 다리를 다치게 한 죄책감에 몹시 미안했다.
얼마전 누님 회갑 때 어린 시절 이야기를 어렵게 꺼냈더니 누님은 표지에 국화꽃이 그려진 그 전과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하고 있었다.
양주석
충북 청주시 수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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