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시네마테크(Cinematheque)' 를 그저 예술영화를 상영하는 곳 쯤으로 여긴다. 때문에 상업영화와 같은 방식으로 예술영화을 개봉하는 극장들도 `시네마테크' 를 자처한다. 1936년에 필름보관소로 시작해 지금까지 이어져 온 프랑스를 보면 그게 아니다. 시네마테크는 단순히 예술영화나 고전을 상영하는 곳이 아니라 사라질 걸작을 복원ㆍ보관하고,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상영하고, 다양한 교육프로그램과 포럼으로 문화와 예술로서의 영화를 가꾸고 가르치는 곳이다.그렇다면 창피하게도 우리에게는 아직 그것이 없다. 멀티플렉스가 많아졌지만 모두 흥행작에 매달리고, 한국영상자료원은 우리영화 필름조차 제대로 간수하지 못한다. 정부는 영화를 산업으로 보려한다. 저질 포르노로 넘쳐 날 제한상영관 신설을 위해서는 3번이나 법을 고치려 하면서도 시네마테크에는 관심이 없다. 지방자치단체 역시 생색나는 잔치인 영화제에만 돈을 쓴다.
이런 척박한 환경에서 계간 `필름컬처' 의 편집주간 임재철(38)씨가 11월까지 `서울 시네마테크' 를 중구 정동 스타식스 6관 (198석)에 만들겠다고 나섰다. 그 소식을 가장 반기면서도 걱정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시절' 의 이광모(39) 감독이다. 5년전 `백두대간' 을 설립?해 자신의 영화만들기에 앞서 이 땅에 예술영화를 보급하겠다며 타르코프스키 작품을 시작으로 42편의 외화를 개봉하다 지난해부터 중단한 그로서는 이 일이 얼마나 소중하고, 힘든지 잘 알기 때문이다.
이 감독도 두번째 작품인 `어머니' 의 시나리오 작업도 중단한 채 시네마테크를 준비하고 있었다. 태광산업이 그에게 새로 짓고있는 신문로 사옥 지하에 2개 상영관을 무료로 빌려주어 작은 곳(80석)은 시네마테크로 11월말 개관할 준비를 해왔다. 그는 선뜻 포기했다. 스타식스와 불과 200m 거리에 있어서가 아니다. 자신보다 임재철씨가 더 적임자이기 때문이다. 시네마테크의 탄생과 운영이야말로 문화운동가나 문화기획자가 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신 옆에서 돕자. 힘을 실어주자. 필요하다면 20편을 포함 갖고 있는 모든 필름을 제공하겠다” 고 밝혔다. 두 사람은 백두대간이 찾는 예술영화를 구하러 함께 미국을 돌아다닌 적도 있다.
임재철씨-부끄럽다. 나도 적임자가 아니다. 1990년대 후반 높아진 예술영화에 대한 관심이 제도로 발전했으면 지금 이렇게 나서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나빠졌다. 우선 나부터 다양한 영화, 아직 못 본 고전들을 보기 위해서라도 시네마테크는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광모 감독-처음 예술영화를 상영하면서 장기적으로 그것이 시네마테크로 가기를 바랐다. 그러자면 공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구심점이 없으면 관객은 떠난다.
임-시네마테크는 특정 주제, 감독 등 프로그램으로 운영해야 한다. 시장논리에 맡겨 두면 한국에서 예술영화는 볼 수가 없다. 작가주의 선구자인 고다르의 영화도 단 2편만qm 상영되었다. 이것이 우리 현실이다.
이-문제는 예산과 지속적인 프로그램 마련이다. 일반영화와 같은 배급과 상영방식은 안된다. 수익이 없으니 아무도 하려하지 않는다. 이미 수입한 필름도 제대로 간수하지 않아 90%이상 쓸수 없게 됐다. 공적 지원 영역으로 끌어들여 다양한 영화를 상영하고 자료를 보관, 축적해야 한다.
임-문화관광부, 영화진흥위원회, 서울시 담당자들을 찾아다니며 시네마테크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지원을 요구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은 미온적이다. 우리나라 영화정책이나 지원이 너무 산업에 치중돼 있다.
이-안타깝다. 정부와 문화계와 영화인들이 내 공간처럼 여기고 도와주지 않으면 시네마테크는 절대 자생하지 못한다. 그래도 해야 되니까 힘들다. 그 짐을 떠 넘긴 것같아 미안하다. 문화는 공기와 같다. 개발한다고 난리를 치기보다는 조용히 근본정책을 개발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맨날 잔치만 벌인다고 될 일이 아니다.
임-영화정책을 영화인들이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산업적 측면과 자신들의 이익만 생각하지 관객과 영화학도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은 고려하지 않는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 맡아야 한다.
이-산업적 측면만 강조하다 보니 영화의 다원화가 상실되고 있다. 비주류를 통해 주류가 주제의식을 정교하게 하고, 반성하는 `거울'이 없다.그러다 보니 대중영화와 예술영화란 흑백논리와 떠벌리기 문화만 남았다.
임-한국에서 영화를 문화라고 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다. 기획영화만 하다 보니 감독이 없다. 기획자와 제작자가 감독이고 감독은 연출보조에 불과하다. `공동경비구역 JSA' 의 흥행도 감독의 힘이 아니다. 이 감~m 에게 맡기면 최소한 얼마 정도의 흥행은 된다는 외국과는 대조적이다. 그만큼 우리영화에는 예술적 토양이 없다는 얘기이다. 서울 시네마테크는 그 교두보를 마련하는 일이다. 개관프로그램인 오손 웰즈 회고전에 이어 오즈 아스지로 회고전, 캐나다영화 걸작선, 황금기 한국영화전 등도 기획하고 있다. 적어도 일년에 9개월은 상영을 하는 곳으로 만들겠다.
이-한국은 뭔가 해보도록 돕는 문화가 아니라 못하게 만드는 문화가 강하다. 심의,스크린쿼터 등 해결해야 할 일도 산더미이다.
임-각오하고 있다. 한번 마음 먹으면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기 때문에 쉬는 한이 있더라도 중단은 않겠다. 그러면 도와주는 사람도 많아질 것이다. 지금도 뜻을 같이하는 6, 7명의 동료들이 도와주고 있다. 좋아서 하는 일이고 또 떳떳하다.
이대현기자 leedh@.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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