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LG상사 홍콩 현지법인장으로 있을 때였다. 국교 수립 이전인 그해 5월, 중국에서의 사업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며칠간 난닝(南寧), 구이린(桂林), 창사(長沙) 등을 여행할 기회가 있었다.당시 중국은 사회주의국가로 몇 안 되는 미수교국이었던 탓에 한국 방문객 은 몇 명 되지 않았던 때였다. 그래서 여행 도중 어떤 일이 일어날 지 몰라서 불안했지만 의지할만한 대사관이나 대표부도 없었다. 동행하는 홍콩거래선만 믿고 가기에는 신변상의 위험이 너무 커 가야할 지 말아야 할 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고심 끝에 거대한 땅덩어리와 인구를 가진 중국에서의 사업 가능성에 대한 욕심이 앞서 여행을 결정했다.
불안한 마음으로 출발했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여행 내내 극도의 스트레스에 시달렸다. 입국할 때부터 느낌이 좋지 않았다. 입국허가 스탬프를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종이쪽지에 입경증(入境證)이라는 도장 하나만 달랑 찍어 주는 게 아닌가. 게다가 난닝으로 가는 프로펠러 비행기가 땅 위 사람들이 다 보일 정도로 낮게 날아 불안은 가중됐다. 이 때문에 구이린의 빼어난 경치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을 정도였다.
약 2주간 중국에 머무는 동안 사업상 일을 보는 시간 외에는 대부분을 호텔? 안에서만 보내야 했다. 신변 안전을 위해 가능한 한 식사는 호텔에서만 했다. 일이 없는 밤에는 밖에 나가 구경을 할 만도 하겠지만 밖에 한번 나가 보지 못하고 호텔 안에서만 보내는 등 모름지기 조심조심이었다. 한번은 비행기표를 구하지 못해 낡은 기차를 탔는데 사람들의 시선이 겁이나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 꼼짝하지 않고 15시간을 견뎠다.
이 기간동안 내가 왜 이렇게 위험을 무릅쓰면서 여행을 해야하는 지에 대해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비즈니스를 위해 위험에 도전한 것이지만 이렇게 비즈니스가 빈번해지면 수교로까지 이어지지 않겠느냐는 막연한 사명감으로 도전한 게 아닌가 하는 결론에 도달했다.
상거래가 활발해지면 미수교국과도 수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어떻게 보면 비즈니스맨은 장사꾼인 동시에 민간사절이 될 수도 있다는 자부심도 되새겨보았다. 그런 마음으로 지루하고도 난감했던 중국여행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이헌출
LG캐피탈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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