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이면 많은 기전들이 내년도 예선을 시작하는 시즌.제32기 명인전도 23일부터 1차 예선이 개막된다. 예선 대국에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한국기원 소속기사 전원이 출전, 모처럼 대국실이 북적거린다.
한데 예선 대국이 진행되는 동안 대국실 밖에서 재미있는 풍경이 자주 눈에 띄곤 한다. 40대 이상의 고참기사들이 종종 걸음으로 대국실을 뛰쳐나와 황급히 담배 한 대를 부쳐 물고 급하게 서너 모금 뻐끔거리다가 잠시 후 아쉬운 듯 재떨이에 비벼 끄고는 다시 황급히 대국실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다.
마치 수업 중에 몰래 빠져나와 화장실에서 도둑 담배를 피우는 학생처럼 보여 우습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처량해 보이기도 한다.
이유인즉 대국 중에는 담배를 피울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에는 “담배를 안피우면 수가 안보인다”고 할 정도로 대국 중 흡연은 무제한의 자유였지만 바둑계에서도 점차 금연파 기사들이 늘어나고 금연권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짐에 따라 흡연족들이 점점 설 땅을 잃어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기원에서는 수 년 전부터 예선 대국실을 흡연실과 금연실로 나누어 사용하고 있는데 그 운영방법이 재미있다. 두 대국자 가운데 고단자의 의사에 따라 대국실을 결정한다는 것.8? 냉정한 승부의 세계답게 철저한 강자 우선의 논리이다.
저단자는 자기가 담배를 피우든 안피우든 관계없이 무조건 고단자가 원하는 방에서 대국을 해야 한다. 당시 흡연족은 대부분 40세 이상의 고참들이고 금연파는 30대 이하의 소장파였기 때문에 젊은 사람들이 다소 불편하더라도 참으라는 취지에서 이 같은 절충안을 마련한 것.
하지만 점차 세월이 지나면서 젊은 기사들이 계속 승단을 거듭함에 따라 상황이 달라졌다. 소장파들이 오히려 고단자가 되어 버린 것.
대부분 10여년 이상 같은 단에서 머물고 있는 고참기사들의 처지가 곤란하게 됐다. 지금까지는 상대가 담배를 피우지 않더라도 자기 뜻대로 흡연실에서 대국할 수 있었지만 이제는 반대로 후배 고단자의 뜻에 따라 꼼짝없이 금연실로 끌려갈 수밖에 없게 된 것.
사실 담배 안피우는 사람이 남의 담배 연기를 맡아가며 대국하는 것도 고역이지만 반대로 줄담배를 피우던 사람이 맨입으로 바둑을 둔다는 것은 더욱 견디기 힘든 고문이다.
일부 체인스모커들은 “금연실에서 대국하면 니코틴 부족현상 때문에 수가 제대로 안보인다. 금연권 뿐 아니라 흡연권도 보장하라”며 불만을 토로하기도 하지만 시대의 흐름을 어찌 거스를 것인가. 억울하면 출세(승단)할 수밖에.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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