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상이 탄생하기까지는 많은 일화가 있다. 다이너마이트로 거부(巨富)가 된 알프레드 노벨로 하여금 자신의 전 재산을 쾌척하게 한 '오보(誤報) 소동'은 그 중에서 가장 흥미를 끄는 내용이다.1888년 프랑스 파리의 한 신문이 '죽음의 상인, 드디어 사망'이라는 노벨 부음기사를 실었다. 다이너마이트가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간 사실을 비꼰 것이다. 이 기사는 오보였다. 죽은 사람은 알프레드 노벨이 아니라 그의 형 루드비히 노벨이었는데 신문기자가 흥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신문기사는 알프레드 노벨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노벨은 이를 계기로 유언장을 다시 썼다. '죽음의 상인'이라고 비난한 때이른 사망기사를 통해 사후(死後)의 오명을 충분히 예상한 노벨이 인류 평화와 과학 발전에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놓기로 했다는 것이다. 노벨은 평생 결혼하지 않아 부인과 자식이 없었지만 가족은 많았다. 노벨 사망후 노벨의 유산을 놓고 분쟁이 크게 일었다. 졸지에 거액의 재산을 놓치게 된 노벨 가족들이 유언장 집행중지소송을 제기했을 정도다. 스웨덴의 학자들도 불만을 터트렸다.
국적을 가리지 않고 노벨상을 수여~um 경우 거액의 상금이 대부분 외국학자들에게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스웨덴의 국왕도 학계의 여론을 의식, 노벨의 유언은 애국심이 결여된 것이라고 비난했었다. 그러나 노벨의 유언은 한치의 오차도 없이 집행됐다.
노벨은 비즈니스맨의 활동영역을 한 차원 높인 위대한 기업가다. 그가 만든 노벨상은 올림픽과 함께 인류문명을 유지·발전시키는 두 기둥으로 평가되고 있다.
노벨상도 부럽지만 노벨재단이 더 부럽다. 세계적인 거부들이 노벨을 벤치마킹하여 공익재단을 설립했다. 미국의 카네기재단이나 록펠러재단이 대표적인 예다. "그러면 한국에서는" 이 대목에서 숨이 막힌다. 한국에도 세계적이 거부들이 많다. 미국의 경제잡지인 포춘지와 포브스지가 매년 발표하는 세계갑부열전에 10명 안팎의 재벌총수들이 꼭 포함된다. 그러나 한국의 거부들이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했다는 기사는 아직 찾아 보기 어렵다.
한국의 현대경제사를 화려하게 장식한 양대 거부는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회장(작고)과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다. 두 분은 자서선을 통해 '돈'에 대해 많은 얘기를 했다. 이 회장은 생전에 발간한 호암자전'(1986년, 중앙일보사)이라는 자서전에서 "미국의 철강왕 카네기는 '잉여재산이란 신성한 위탁물'이라고 말했다.
그 위탁물을 어떻게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쓰느냐가 문제다"고 지적했다. 이 회장은 이어 "재산을 삼분화(三分化)한 한 몫으로 문화재산을 설립한 의도는 … … 재정기반이나 내용에 있어서 미국의 카네기재단이나 스웨덴의 노벨재단에 버금가는 것을 만들어 보려는 데 있었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삼성문화재단을 '한국의 카네기재단'이나 '한국의 노벨재단'으로 평가하는 사람아 아직 없다.
가출소년 출신으로 세계적인 갑부가 된 정 명예회장은 '이 아침에도 설레임을 안고'(1986년,삼성출판사)라는 자서전에서 1984년 4월 부산대 특강을 소상하게 소개하며 "우리나라의 모든 대기업은 노동자들이 피땀 흘려 이룩한 것인데도 기업주들이 자신의 2세들에게 경영권을 물려주고 있는 사실은 기업윤리상 도저히 납득이 가지 않는 처사가 아닐 수 없다"고 강조했다. 정 명예회장은 그후 이 발언에 대한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내놓지 않았다.
한국의 재벌총수는 왜 제대로 된 공익재단을 아직도 탄생시키지 못한 것일까. 돈을 노벨만큼 벌지 않았기 때문인가, 아니면 재산을 물려줄 처자식이 많아서인가. 또 노벨의 사망기사 오보와 같은 충격이 없어서인가, 아니면 '돈'에 대한 철학이 부족한 탓인가.
한국에도 공익재단은 많다. 거대 재벌그룹이든, 미니그룹이든 그룹마다 공익재단은 적어도 1개, 많게는 3,4개씩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공익재단다운 공익재단은 과연 몇 개나 되는가. 대답은 매우 회의적이다. 재벌이 운영하는 공익재단의 상당수가 대주주(그룹총수)의 상속·증여세 탈세수단으로 설립되어 계열사의 경영권 장악을 위한 '사실상의 지주회사'로 운영되고 있다. 재벌의 공익재단은 또 하나의 계열사로 존재하고 있을 뿐이다.
이백만 경제부장 milli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