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와 대통령 친인척 관리를 전담해온 `사직동팀'의 폐지는 권력남용 논란과 인권침해 시비를 없애겠다는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의 의지를 말해준다.사직동팀은 1972년 설치돼 고위공직자나 정치권 실세, 대통령 친인척 등 검찰, 경찰이 직접 다루기에는 미묘한 사안들을 내사, 권력 내부의 기강을 세우는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이런 순기능에도 불구, 옷로비 사건과 한빛은행 사건에서 권한남용, 청부 조사, 일부 직원들의 비위 등 역기능이 불거졌고 야당이 정치적 악용가능성을 문제삼으면서 존속여부가 쟁점이 됐다.
사실 사직동팀은 역대 정권에서 여권의 내부 통제, 야당 견제라는 정치적 목적으로 이용된 측면이 있었으며, 이 내막을 누구보다 잘아는 야당의 구여권 출신 인사들일수록 폐지를 요구했다.
청와대 민정수석실도 이런 문제점을 인식, 그동안 개선방안을 강구해왔다. 김 대통령이 현 정부 출범초 사직동팀 폐지검토를 지시했으나 실무진의 반대로 `없던 일'이 됐다. 또 옷로비사건 때 사직동팀의 지휘권을 경찰청으로 넘기는 방안이 강구됐으나 내부 반론으로 백지화했다가 한빛은행 사건에서 청부 수사의 흔적이 드러나면서 폐지론이 대두됐다.
경찰청 이관론과 폐지론 중에서 폐지론으로 결론이 난 데는 김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도 은연중 영향을 미쳤다고 봐야한다. 김 대통령은 이미 지난달 말 신광옥(辛光玉) 민정수석으로부터 폐지의 필요성을 보고받고 구체적 방안의 마련을 지시했다.
노벨상 수상이 존속에서 폐지로 결론을 바꾼 것은 아니다. 그러나 노벨상 수상이 김 대통령에게 권력 보다는 권위에 기반을 두는 민주적 리더십을 확실히 택할 수 있게 했고 이는 사직동팀의 해체를 결론짓는 데 탄력을 주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사직동팀 탄생부터 폐지까지
'한국의 게슈타포(비밀경찰)' `고위층의 저승사자' `권력의 사설정보기관'
다양한 수식어가 상징하듯 `사직동팀'(경찰청 조사과)은 1972년 창설 이후 28년간 무소불위의 힘을 가진 비밀 수사ㆍ정보기관으로 갖가지 정치적 사건에 깊숙이 개입해 왔다.
정치인과 고위공직자에겐 공포의 대상으로 여겨졌고 때로는 과다한 정치사건 개입에 따른 권력남용과 과잉수사로 물의를 일으켜 왔다. 이로 인해 사직동팀 관련 사건이 터질 때마다 `정치탄압'과 `표적수사' 라는 여론의 비난을 받아왔고 야당으로부터는 `폐지대상 1호'로 지목됐다.
사직동팀의 뿌리는 유신정권 때인 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해 6월 김현옥 내무장관이 정석모 치안본부장에게 “미국의 연방수사국(FBI)과 같은 조직을 만들라”고 지시해 발족한 `치안국 특수수사대'가 사직동팀의 전신.
이후 특수수사대는 정치인과 고위공직자 비위에 대한 정보수집, 기업인들의 외화 해외도피 등 청와대가 직접 지시한 특명사건을 수사하며 막강한 힘을 휘둘렀다.
하지만 특수대는 권력층 내부로부터도 `정부내 사설정보기관'으로 과도한 힘이 몰려있다는 지적을 받게 되자 76년 특수1대와 2대로 분리됐다. 1대는 청와대 특명사건, 2대는 치안본부 자체 기획수사를 맡았으E? 별도 사무실의 장소를 따서 각각 `사직동팀'과 `신길동팀'으로 불렸다.
특수대는 80년 신군부 집권 이후 김종필ㆍ이후락씨 등 정치인 고문과 80년 `10ㆍ27 법난' 때 승려 고문사건 등으로 처음 공개적인 비판의 도마에 올랐다.
81년 당시 모그룹 회장의 부탁을 받고 맹인지압사를 고문조사한 사실이 언론에 폭로되면서 일반에 실체가 알려졌고, 83년 한일합섬 김근조 이사를 고문하다 뇌출혈로 숨지게 해 파문을 일으켰다.
89년 치안본부가 경찰청으로 바뀌면서 특수2대는 경찰청장 지휘하의 특수수사과로 변경됐으나, 특수1대는 계속 사직동에 사무실을 둔 채 이름만 경찰청 조사과로 바뀌었다.
97년 대선정국을 뒤흔든 `DJ 비자금사건'이 사직동팀의 주도로 이뤄졌다는 사실이 드러나 여론의 집중포화를 맞았지만 “대통령 친ㆍ인척이나 고위층의 이권개입을 막는 긍정적 기능도 있다”는 이유로 현정권에서도 명맥이 유지됐다.
그러나 `사직동팀'은 지난해 옷로비 사건과 올해 신용보증기금 외압의혹 사건으로 존폐의 기로에 서게 됐다.
사직동팀의 실질적 지휘책임자인 박주선 당시 법무비서관이 사직동팀 내사보고서를 유출한 혐의로 구속되고, 최광식 팀장마저 검찰수사를 받는 사상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 또 최근 신용보증기금 대출외압 의혹사건 수사과정에서도 `청부 불법내사' 혐의가 드러났다.
사직동팀은 그 역사만큼이나 팀장들의 이력도 파란만장하다. 5ㆍ6공 시절엔 주로 TK출신이, 문민정부 시절엔 PK, 현 정부에서는 호남출신들이 자리를 독차지하는 등 권력의 외풍에 크게 흔들려 왔다. 또 핵심요직 답게 81년부터 5년간 팀장을 지켰던 김화남씨는 경찰청장을 지냈고 97년까지 역대 팀장 대부분이 치안감까지 올라갔다.
그러나 사직동팀에 대한 비난 여론이 커지면서 최근 박재목 ㆍ최광식씨 등은 고배를 마시는 등 팀의 위상에 따라 운명이 엇갈렸다.
배성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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