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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가 만난사람] "모두가 제멋대로, 사회전체 시스템이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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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호가 만난사람] "모두가 제멋대로, 사회전체 시스템이 문제"

입력
2000.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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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만난 사람에게 “내 삶은 실패한 것 같다. 내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으며 배우고 공부한 것도 쓸 데가 없다. 학생들에게 열심히 공부하라고 하지만 정작 나는 내가 왜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가를 모를 때가 많다”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러나 경기 성남시 경원대학에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있는 홍종학(洪鍾學)은 기자에게 이런 말을 주저 없이 털어놓았다. 자신의 말을 기사로 쓰기 위해 찾아간 사람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것은 준비(계산)된 답변 아니면 진실에서 우러난 것 둘 중의 하나다. 그러나 그의 표정이나, 공허한 듯 말끝마다 껄껄거리는 웃음소리는 그의 무력감이 진실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느낌을 갖게 했다.그는 얼마 전부터 `이슈투데이'라는 인터넷사이트(www.issuetoday.com)에 `한국은 망한다'라는 글을 올리고 있다. 이슈투데이는 `지식인 언론'을 표방하고 있다. 도발적인 제목 때문인지 그의 글은 조회수가 만만치 않다. 제일 먼저 올린 글 '한국은 망한다_별이 사라진다'는 742명이 읽었으며 두번 째 글 `망한다는 의미에 대하여'는 667명이 읽었다. 나머지 3개의 글도 각각 500명 안팎이 찾아와 읽고 갔다. 13일에 올린 여섯번 째 글 `허수아비 검찰'도 조회수가 만만치 않을 것 같~m . 그가 첫번째 글에 붙인 게재순서에 따르면 `한국은 망한다'는 최소한 18번은 계속될 예정이다.

경제학자인만큼 그의 글은 경제 현안이 주된 소재다. 재벌의 전횡, 관리들의 무능, 외환시장의 동요 등등에 대해 메스를 들이대고 있다. 하지만 기자가 그와의 만남을 전하는 건 그의 글 내용이나 그의 시각에 마음깊이 탄복해서는 아니다.

그는 한국이 망한다는 이유를 이렇게 말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선수들이 제 멋대로 노를 젓는 조정(漕艇)과 같다. 조정은 선수 모두가 한 방향으로 노를 저어야만 앞으로 나간다. 그러나 우리가 탄 배는 노를 앞으로 미는 사람 따로, 뒤로 댕기는 사람 따로다. 가라 앉지 않을 지는 몰라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다른 배는 모두 앞으로 나가는데 우리만 제자리서 맴돈다면 그게 망하는 게 아니고 뭔가.” 그러나 이런 정도의 경고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한 것이다. 신문에는 매일처럼 이런 종류의 기사와 칼럼이 실리고 있고, 서점에도 비슷한 소재를 다룬 책이 숱하게 나와있다. 얼마 전 `한국이 두렵다'는 책을 낸 주한미상공회의소 소장 제프리 존스처럼 `한국과 한국인의 저력을 무시하지 말라 `는 외국인들도 없지는 않지만 그런 주장 역시 `우리가 근본적으로 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는 조건과 전제를 달고 있는 한 `한국은 망한다'라는 말과 다름이 없다.

기자가 그와의 만남을 전하는 건 이런 생각 뒤에 숨겨져 있는 그의 절망감을 알리고 싶어서다. 사실 기자는 그와의 만남 첫 머리에 “그런 도발적 제목으로 무엇을 노리는 것이 아닌가”라는 무례한 질문을 던지기도 했다. `주류에 포함되지 못한 변방의 경제학자가 주류에 포함되기 위해 의도적으로 ~um 는 제목의 글을 쓰는 게 아닌가'라고 물은 것이다. 그는 기자에게 “그런 의도가 전혀 없었다고는 할 수 없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와의 대화를 나눈 후 기자는 그가 남의 눈길을 끌기 위해 그런 글을 썼을 것이라는 의심은 떨쳐버렸다. 오히려 그보다는 무력감에 빠진 지식인이 있는 힘을 다 끌어 모아 사회에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런 의심을 가진 기자가 저급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기자가 이렇게 장황하게 그와의 만남 앞 뒤를 밝히는 건 물론 한국이 망할 거라는 그의 `절규'와 그 절규에 깔린 논리에 기자도 일부 공감하기 때문이다.

그는 우리사회가 앞으로 나가지 못하는 조정처럼 된 것은 “조정자(調整者)가 없거나 있어도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훌륭한 조정팀에는 뛰어난 조타수가 있다. 조타수의 구령에 맞춰 선수들이 한 방향으로 노를 저으면 배는 빨리 앞으로 나갈 수 있는 것이다. 조타수가 없거나 제대로 역할을 하지 않으면 선수들의 힘만 소진된다. 우리사회 모든 구성원은 모두 열심히 일한다. 재경부 관리들은 밤을 새워 정책을 짜낸다. 기업가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밤새워 일한다. 학자들은 밤을 새워 연구를 하고 있다. 모두가 이렇듯 열심히 노를 젓고 있지만 한국이라는 배는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모두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이런 논법 역시 새로운 것은 아니지만 그의 무력감을 이해되도록 다시 한 번 전한다. “정치 지도자와 정부가 제대로 하면 되지 않느냐고 정부에 요구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났다. 현실적으로 경제정책을 맡고 있는 재경부 관리들은 열심히 일한다. 일이 생기면 밤을 새워 일한다. 하지만 그것으로? 해결이 되지 않으니 또 일이 터지고 그들은 또 밤을 새워 무언가를 만들어 낸다. 그런 일이 반복된 게 우리나라 경제정책 아닌가. 그렇다면 한국의 문제는 관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적 시스템의 문제일 것이다.” 그가 보기엔 시스템을 고치는 건 더 어렵다. “관료들이 같은 일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공천제도 등 정치제도가 바뀌어야 할 것이다. 정치제도가 바뀌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데 그게 어디 쉬운가. 이해 당사자들이 자신의 기득권을 스스로 내놓으리라고는 기대 할 수 없다. 언론이 문제를 제대로 걸러줘야 하는데 언론에도 현실적인 벽이 있는 것 같다. 이 모든 걸 해결하기 위해 시민혁명과 같은 것을 기대해보지만 그러기까지 얼마나 오랜 시간이 걸릴 것인가. 그래서 좌절할 수밖에 없다”라고 말했다. `메시아'나 `착한 전두환'이 필요하다는 뜻인가라는 기자의 농 섞인 질문에 그는 `허허'하고 웃었다.

그의 진짜 무력감은 이런 흐름에서 자신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데서 비롯된다. “내가 경제학을 공부한 것은 우리 경제에 무언가 보탬이 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그러나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온 지난 10년간 내가 우리 경제를 위해 한 게 아무것도 없다. 지내고 보니 내가 우리 경제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었던 같지도 않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경제학자로써 바람직하지 못한 생활을 해왔고, 따라서 내 인생도 실패했다고 생각한다.” 경제학자로써 우리 경제에 아무것도 기여하지 못했다는 그의 고백은 듣기에 따라서는 아주 건방진 말일 수도 있다. 경제학자는 누구나 크건 작건 한 자리를 해야 한다는 말로 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의 말은 ?m 런 의미가 아니었다. 사회에 이바지하기 배웠는데 전혀 이바지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 우리나라의 경제학자는 수천 명은 될 것이다. 대부분 외국에서 학위를 딴 사람들일 텐데 이중 한국경제를 진지하게 연구하는 사람을 드물다. 해 봐야 들어주는 사람이 별로 없기 때문일 것이다. 한국경제학계에 `저널'이 많지만 나부터도 바쁘다는 핑계로 읽어보지 않는 판이다. 학자들도 남의 글을 제대로 읽지 않는데 관리들이 경제 논문을 읽어보기나 하겠나. 읽히지 않을 논문을 쓰기 위해 열심히 공부를 해야 할 필요가 있는가라는 생각이 갈수록 깊어진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는 쓰일 데 없는 공부를 한 게 낭비라는 생각도 하는 것 같았다. “미국에서는 경제학자들이 자기의 분야만 열심히 공부하면 된다. 그들의 결과물은 어디선가 한 곳에 모여 정리된 후 궁극적으로는 정책에 반영된다. 그러니 특화된 분야의 전문가들이 많이 생기게 되고 학문적 깊이도 두터워 진다. 그러나 우리는 특화된 교수가 현실에 대해 한 마디하면 현실을 모르고 하는 소리라는 비난을 받게 되고, 그러다 보니 그런 사람들은 이야기할 기회가 갈수록 줄어들고 구체성 없는 일반적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사람의 목소리만 들린다.” 목소리가 다양한 사회가 발전하는 사회인데 우리사회는 한 쪽 목소리만 전달되고 있으니 이 역시 망하는 길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그런 생각 끝에 그는 교수로써도 자신이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생각도 한다. “학생들을 가르친다는 건 그들이 다음 단계로 나아갈 준비를 시킨다는 것인데 그걸 못하고 있다. 그러니 가르치는 게 편안하지 않다. 학생들이 제대로 공부를 하려?면 내가 과제를 많이 내주어야 하는데 그러면 채점에 시간을 빼앗긴다. 미국에서처럼 조교들이 채점을 하는 것도 아니고. 그래서 요즘은 과제를 내주지 않는다. 내가 게으른 탓인데, 정말 요즘은 고민을 많이 하고 있다. 내가 여기 계속 있어도 되는 건지. 용기가 있었더라면 진작 사표를 냈을 것인데----.”

그의 무력감과 좌절감을 기자가 제대로 옮긴 것 같지 않다. 어쩌면 기자가 더 무력함을 느끼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기자의 무력감을 그의 말을 빌려 옮기고 있는 것이나 아닌지 모르겠다.

편집국부국장 soongchung@hk.co.kr

■홍종학 교수의 '또라이 교수'

연세대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캘리포니아 주립대학(UC SAN DIEGO)에서 `정보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2년 전 `삼수, 사수를 해서라도 서울대학에 가라'라는 책을 냈다. 이 책에는 `또라이교수의 달꼬리 공부법'이라는 부제도 달려있었다. “아니 경제학 교수가 뭐 이런 책을 썼느냐, 제목도 진지하지 못하고?”라고 물었더니 “출판사에서 붙인 제목인데, 제목때문인지 별로 팔리지도 않았다”며 멋적게 웃었다. “당신도 서울대학을 못 나왔는데 서울대학을 꼭 가라라는 말은 무엇이며 또라이교수는 또 무슨 말이냐”고 거푸 물었더니 시간이 있으면 읽어보라며 책을 주었다.

그러나 제목과는 달리 상당한 사색과 진지함으로 가득찬 책이었다. 공부법이 아니라 `권학문(勸學文)'이었다. 시간이 남아서 읽을 책이 아니라 시간을 내서라도 읽어볼만한 책이었다. 물론 “대학을 안 나온 것보다 나오는 것이 좋고, 이왕이면 명문대를 나오는 것이 살아가는데 편하다”는 현실론이 경제학자적 분석을 통해 제시되긴 하지만 공부의 의의와 공부를 함으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을 설파하는 대목이 더 길고 충실하다. 그가 주장하는 것 중의 하나, &ldq4?uo;공부는 자유로워지기 위한 것이다. 공부를 잘 하는 것은 강해짐을 의미하고, 강하다는 것은 더 많은 자유를 의미한다. 아름다운 삶을 살기위해서도 공부를 해야 한다. 비선대에서 느낄 수 있는 설악산과 대청봉에서 느낄 수 있는 설악산이 다르듯 공부를 많이 하면 새로운 세상을 볼 수가 있다!”

책을 써냈어야 할 정도로 '공부'와 공부를 하는 것에 대해 이렇게 진지한 탓에 그는 또라이교수라는 별명을 얻었다. 어느 날 그는 공부를 제대로 해오지 않은 학생들을 강의실 밖으로 내보내 운동장을 돌도록 했다. 대학에서 공부를 안 해왔다고 학생들에게 구보를 시키는 교수가 있을까. 한 동료는 그에게 “요즘 애들 구보시킨다며?”라고 묻기도 했다. 딱 한 번뿐이었지만 그 일로 그는 `또라이교수'가 됐다.

그는 많은 청소년들이 공부를 하지 않는 건 공부하는 방법을 몰라서라고 단정한다. 그래서 그는 모두 함께 공부방법에 대해 논의할 것을 제의하고 있다 “여태껏 무엇 무엇을 가르쳐야 한다고만 말했지 학생이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소홀했다. 교육당국자는 물론이고 고교교사 대학교수 학원강사와 과외강사까지 모두 모여 공부방법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그는 올해 마흔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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