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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문화대통령의 안목

입력
2000.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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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노벨평화상의 수상자를 전하는 보도에 국민들은 크게 환영하고 있다. 김대중대통령을 비판하던 사람들도 한국인 최초의 노벨상 수상이라는 점 자체에는 대체로 긍정 일변도이다. 그러면서 이제 내치와 경제살리기에 더욱 힘써달라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김대중대통령은 일대 전기(轉機)를 맞은 듯하다. 새삼 돌아보는 일대기에는 한국현대사의 주요 사건들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러한 격변의 중심에 서서 김대중대통령이 일관되게 밀고온 사업은 민주화와 인권을 위한 투쟁 그리고 민족화해와 평화체제 구축이었다. 그 기나긴 여정의 정당성은 세계가 노벨상 수여라는 형식을 통해 공식 인정했다.

김대중대통령은 인동초로 비유된다. 매서운 추위를 이겨낸 인동초는 5~7월 따뜻한 날을 맞아 아름다운 꽃을 피운다. 꽃이 피는 시기는 짧을 수밖에 없으나 내일을 위한 씨앗을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 10월에 인동초는 알찬 열매를 맺는다. 김대중대통령에게 이 열매는 어떻게 열릴 것인가?

김한길 문화관광부 장관은 취임 기자간담회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김대중대통령은 IMF 경제위기만 아니었다면 ‘문화 대통령’으로 불렸을 만큼 문화에 대한 관심과 이해가 높습니다.”문화인들도 문화에 대한 대통령의 안목에 높은 점수를 주고 있다. 순수문화에 대해 자기 논리로 말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정치인으로서 기대가 높았다. 문화예산의 확충에도, 체육과 관광부문의 비중이 크기는 하지만, 1조원을 넘어서 어느 정부보다 가시적 결과를 가져온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국민의 정부에서 펼쳐지는 문화정책에 획기적인 점수를 줄 수 있다는 의견은 적은 듯하다. 국내정치, 외교, 통상, 도시계획, 기술혁신, 지역개발 등에 문화개념이 투영될 때 막대한 부가가치가 생기는 것에 관심이 적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한 예를 들어, 지금 논란을 벌이는 신도시 계획이 실천된다고 하자. 우리는 신도시를 건설한 경험이 많지만 대부분 주택공급에만 관심을 쏟아 무국적 아파트촌만 양산해놨다. 어디에도 한국문화가 담뿍 배인 신도시는 없다. 한국의 정서와 문화가 배제된 도시를 김대중정부가 세운다면 실망이 적지 않을 것이고, 한국에 오는 외국손님도 찾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김대중정부에서는 현대와 전통을 겉모습과 기능에서 함께 아우른 신도시가 계획돼야 하지 않을까?

전통을 담아내서 후세에 전달하는 기능은 박물관이 맡고 있다. 과거와 미래를 잇는 고리 역할을 하면서 새로운 창조에 신선한 발상을 제공해주는 곳이 박물관이다. 우리는 용산에 새 국립중앙박물관을 짓고 있다. 종전의 고고부와 미술부가 중심이던 박물관에 역사부가 신설되어 한국역사 전체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전시실을 갖게 된다.

김대중대통령 재임 중에 새 박물관은 틀을 잡는다. 이전 정부가 마련한 설계에 따라 규모면에서는 세계 최고의 박물관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그러나 박물관 운영에 관한 모든 내용은 김대중정부 아래서 추진된다. 민족문화의 산실로서 알찬 내용이 될 것인지는 현정부의 관심과 지원 그리고 장기적인 사업계획에 의해 판가름난다.

과문한 탓인지 모르지만 김대중대통령이 용산의 새국립중앙박물관을 방문했다거나 건설과정에 관심을 가졌다는 기사를 본적이 없다. 어느 시대나 집권자의 명성과 영예는 문화 치적에 크게 좌우된다. 아무리 강력한 권력을 소유했거나 경제를 발전시켰다고 해도 역사기록에서는 문화부문의 업적을 가장 중요시한다. 그렇다면 당대 문화에서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중앙박물관의 신축은 김대중대통령에게 기회를 제공해준다고 할 수 있다.

문화인들은 말한다. “우리는 문화대통령을 갖고 싶다.” 노벨평화상 수상은 김대중대통령의 정치역정에 하나의 이정표가 된다. 만난을 헤치며 숨가쁘게 달려온 대통령이 이제 내일의 문화를 위해 새롭게 초석을 다지고 있다는 보도기사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최성자 논설위원 sjcho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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