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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에 북두칠성이이 숨어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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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에 북두칠성이이 숨어있다고?

입력
2000.10.1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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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일 오후 대구 동구 동내동. 농가 안마당에 놓인 가로 3m 세로 2.25m의 지석묘를 천문학자 5명이 둘러쌌다. 고인돌 위에 잔뜩 쌓인 호박넝쿨과 나뭇가지, 버려진 삽 등을 치워내고 돌 위를 면밀히 살폈다. 수㎝ 크기로 동그랗게 파인 것은 분명 인위적인 흔적이다. 조심스럽게 표시를 남기고 세보자 60여개의 굼(뚫린 구멍과 달리 움푹 패인 것을 가리키는 말로 손보기 교수가 쓴 말이다)이 드러났다. 놀랍게도 그 중 7개는 한눈에 북두칠성 모양이었다.“이건 정말 북두칠성과 비슷한데.” “북두칠성은 어떤 고인돌에서나 흔하게 보이지 않습니까?” “아니오. 고인돌이나 고구려 벽화에 그려진 어떤 것보다 실제 북두칠성에 가까운 모양입니다.” “이 커다란 2개의 구멍은 뭘까?” “글쎄요. 후대에 제단으로 쓰기 위해 팠거나 또는 다른 상징적 의미로 판 것 같습니다. 중심부에 2개의 구멍이 뚜렷하게 보이는 고인돌은 더러 있거든요.”

고인돌에서 별을 찾는 이들. 선사시대의 하늘을 복원하려는 이들. 그들은 경북대와 천문연구원의 고(古)천문에 관심을 둔 학자들이다. 경북대 대기천문과학과 박명구 교수가 “학생 하나에 박사 4명이 들러붙어 잔소리를 해대고 있다”고4? 농을 던진 것처럼 실제 연구의 주도자는 박 교수 밑에서 박사과정 중인 양홍진씨다.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부터 종아리 맞으며 한문을 깨친 양씨는 어려운 고서(古書)를 자유롭게 읽을 줄 아는 몇 안 되는 자연과학자다. 또 전공은 제각각이나 천문연구원의 송두종, 안영숙, 성언창 연구원이 답사에 합류했다. 답사에는 빠졌지만 김일권(서울대 종교문제연구소) 박사도 고인돌부터 고구려고분으로 이어지는 조상의 천문관(天文觀)을 조망하려 하고 있다.

다음 답사지는 대구시 동구 각산동. 키가 3m가 넘는 이 곳 고인돌은 주민들이 마을 이름을 새겨넣느라 세워놓았다. 여기저기 깨진 흔적이 보였지만 그나마 뒷면에 이름을 새긴 게 천만다행이다. 여기선 40여 개의 굼이 나왔다. 찌그러진 네모꼴과 삼태성으로 보이는 3개의 별(?)은 꼭 오리온자리 일부 같다. 그러나 아무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그래도 동내동 지석묘의 북두칠성 모양은 큰 수확이다. 양홍진씨는 “2개의 큰 구멍은 상징적으로 판 것일 수 있으니 이를 연결한 가운뎃점을 하늘의 중심으로 삼아 동정(同定ㆍ별 위치를 정확히 분석하는 것)해 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인돌에 새긴 굼을 별자리로 동정하기는 쉽지않다. 3,000~5,000년 전의 밤하늘은 지금과 다르다. 별들이 하룻밤 새 도는 하늘의 중심은 지금의 북극성이 아닌 다른 별이다. 지구의 자전축 자체가 2만 5,700년 주기로 회전(세차운동)함에 따라 자전의 중심(북극성)이 달라지는 것이다. 또 별 자체의 고유운동이 있어 별자리의 모양도 차이가 난다. 대신 시기를 알 수 있다면 현대 천문학은 세차운동과 고유운동에 따른 별 위치 변화를 컴퓨터 시뮬레이션으로 보정, 과거의 밤하늘을 4?복원해 낼 수 있다. 그러나 선사인들이 하늘의 어느 부분을 그렸는지, 그리고 얼마나 정확하게 그렸는지는 의문이다. 고인돌 도록에 “어렸을 때 동네 아이들이 팠다”는 기록이 있는 것처럼 후대인들이 굼을 추가했을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박 교수는 “선사인의 관측이고 평면도 아닌 울퉁불퉁한 바위에 그린 것이라 컴퓨터로 정밀하게 동정하는 건 오히려 힘듭니다. 일단 고인돌에서 북두칠성 같은 패턴을 찾아야죠. 대략 신석기~청동기시대의 밤하늘을 놓고 육안으로 비교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다른 별 위치도 일치한다면 동정이 가능하죠”라고 말한다. 그는 “이러한 바위구멍들이 별자리로 밝혀지면 우리는 가장 일찍이 별자리를 관측하고 기록한 민족으로 재평가될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의 기대는 확신에 가깝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별자리 그림을 보면 이미 삼국시대의 천문관측 수준이 보통이 아니다. 이 수준에 이르기까지 발자국이 어딘가 남았어야 한다”는 것. 성언창 연구원 역시 “1,000년 넘는 시차가 있지만 고인돌과 고구려 고분이 모두 장례 의식의 표현”이라는 공통분모에 주목하고 있다. 선사시대의 조상이 바라보았던 밤하늘을 바위에서 찾으려는 현대의 천문학자들. 그들은 여전히 이렇게 되뇌였다. “정말 누가, 왜 이 구멍을 팠을까…?”

대구=김희원기자 hee@hk.co.kr

■충북 청원 고인돌서 출토된 '갈돌판'

지금까지 고인돌 굼은 다산(多産)이나 풍요를 기원하거나 부족의 위치를 표시한 성혈(性穴)로 해석돼왔다. 천문학적 의미를 부여한 것은 불과 4~5년 전 북한에서다.1990년대 후반 리준걸, 김동일 등이 고인돌, 갈돌판 등에서 4,000~5,000년 전의 북두칠성, 작은곰자리, 카시오페아, 케페우스, 기린자리, 용별자리, 목동자리, 은하수 등을 동정해 논문을 발표했다. 한반도는 `고인돌 공원'으로 불릴 만큼 3만기의 고인돌이 전역에 분포해 우리 학자들에게도 큰 자극이 됐다.

첫번째 관심의 대상은 충북 청원 아득이 고인돌에서 부장품으로 출토된 갈돌판이다. 한 면을 평평하게 갈고 60여 개의 굼을 파는 등 의도적으로 제작한 흔적이 역력해 1970년대 이융조(충북대 고고미술사학과) 교수가 발굴했을 때부터 별자리 가능성을 보고했다. 약 2,500년 동안 땅 속에 잠들어 있던 터라 후세인의 가필도 전혀 없다. 이 교수가 발굴한 유물에 대해 박창범(서울대), 이용복(서울교대) 교수는 북두칠성, 케페우스, 목동자리 등 일부 별자리를 동정해 20일 충남대 한국우주과학회ㆍ한국천문학회 학술발표회에서 발표할 예정이다.

이들 세 교수는 갈돌판을 아예 `별자리판'으로 이름 붙였다. 별자리판이 완전히 동정되면 가장4? 오랜, 원시적 형태의 천문도가 발견되는 셈이다. 물론 선사 유물 중 달을 관측한 2만년 전 프랑스 뼈 유물, 태양의 운행을 관측한 것으로 추정되는 영국의 스톤헨지 등이 있다. 그러나 서양의 경우 별자리를 기록한 천문도는 근대에 와서야 발전했다.

돌에 새긴 최고(最古)의 천문도로는 1241년 중국의 순우천문도(淳祐天文圖)가 꼽힌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것은 1395년 천상열차분야지도(天象列次分野之圖). 여기엔 “고구려 때 썼던 천문도를 수정한 것”이라고 기록돼 있으며 최근 박창범 교수가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1세기의 하늘을 그린 것이라는 사실을 확인했다. 고구려 때의 석각천문도는 대동강에 빠졌다고 전해지는데 원본이 발견되지 않는 한 사실을 완전히 규명하기는 어렵다.

또 다른 의문은 일본에 있다. 7세기말~8세기초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일본 나라(奈良) 기토라 고분에선 별 600여 개, 적도, 황도, 주극성(1년 내내 보이는 별) 등이 표시된 정밀한 별자리 그림이 발견됐다. 그러나 별 관측지가 나라가 아닌 평양쯤인 북위 38~39도로 밝혀져 고구려 도래인 제작설이 크게 대두됐다. 그러나 정작 고구려나 수ㆍ당에는 이렇게 정밀한 천문도가 없고 13세기 이후에나 등장하는 것이다.

고인돌 연구는 이제 인문-자연과학에 걸쳐 흥미로운 주제가 됐다. 고조선 때부터 고구려, 고려, 조선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천문학과 천문관이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를 살펴보기 위해서는 고고학, 천문학, 종교학 등 학제간 공동연구와, 고구려 고분까지 보유한 북한과의 교류협력이 절실하다.

김희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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