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일부터 일본을 방문중인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가 14일 밤 TBS의 특별방송 `중국 총리와 시민의 대화'에 출연했다.중국 지도자 최초로 외국 국민과의 직접 대화에 임한 그는 13억 인구의 사회주의 대국을 이끄는 `철혈재상'의 모습과는 거리가 멀었다. “부인이 무섭지 않느냐”는 질문에 “무섭기보다는 귀엽다는 생각”이라고 받아 넘겼고 스스로에 대해 “얼굴이 무섭게 생겨 손해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고 밝혀 웃음을 자아냈다.
호궁(胡弓) 연주 요청에 “돼지잡는 소리처럼 들릴 지도 모른다”면서도 곧바로 응해 박수를 받았다. 동네 아저씨같은 소탈한 태도는 가시돋친 질문조차도 가볍게 녹였다. `1세대 1자녀' 정책에 대한 질문에 “내 손자도 외로움을 타지만 그렇다고 산아제한을 하지 않으면 세계가 중국인으로 덮힐 것”이라는 답변으로 참석한 100여명의 고개를 끄떡이게 했다.
전날 정상회담에서 “일본국민도 군국주의의 피해자”라고 미래지향적 관계를 강조했던 그는 특히 역사 문제에 대한 답변에서 간명했다. 중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비하로 비난을 샀던 소위 `제3국인' 발언에 대해서는 “중국인을 자극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경고했고, “난징(南京) 학살은 엄연한 사실”이라고 x? 을 박았다. 또 “일본은 아직 과거사에 대해 문서로 사죄한 바 없다”고 말했다. 1998년 가을 장쩌민(江澤民) 국가주석의 `웅변'과 하등 다를 바 없는 내용이었지만 답변 과정에서 나온 자연스런 그의 발언은 일본 보수 언론조차도 시비를 걸지 못했다.
일본 국민의 뇌리에 파고 든 `주룽지의 미소'는 철저하게 연출된 것이었다. 이날 저녁의 녹화에 앞서 그는 오후 내내 예행연습에 매달렸다. 2년전 江주석의 `웅변'이 일본내 강경 보수파의 입지를 강화하고 반중 여론만 고조시켰던 경험에 대한 계산된 반성인 셈이다.
역사의 굴레는 스스로 벗지 않는 한 누구도 벗기거나 덧씌울 수 없다. `주룽지의 미소'는 어떤 강성 목소리보다도 일본의 어깨를 무겁게 하는 것이기도 하다.
황영식 도쿄특파원 yshw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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