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벨평화상 수상후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정치는 크게, 국정은 세심하게'라는 원칙을 세울 것으로 보인다. `큰 정치'는 어느 대통령이나 바라고 추구하는 목표지만 노벨상 수상은 김 대통령에게 정치적 보폭을 크게 할 수 있는 여유와 탄력, 그리고 책임감을 주었다고 볼 수 있다. 현안을 둘러싸고 대결 보다는 대화, 갈등 보다는 화해를 우선시하고 가급적 당파적 정쟁에 초연하는 자세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그러나 계층간 이해가 복잡하게 얽혀 있고 지역갈등, 비 이성적 대립구도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는 상황에서 노벨상 수상과 큰 정치가 만병통치약일 수는 없다. 정치권도 잠시 휴전을 하고 있지만 정기국회에서 현안들을 둘러싸고 다시 격돌할 가능성이 있어 노벨상 시즌이 의외로 짧을 수도 있다.
이런 점을 김 대통령도 잘 알고 있다. 김 대통령이 수상 발표 당일 축하인사를 하러 온 수석들에게 의료계와 정부 협상, 증시 전망을 묻는 데서도 들뜬 분위기를 억제하려는 의지가 읽혀진다. 청와대 박준영(朴晙瑩) 대변인이 14ㆍ15일 연이어 “대통령은 담담하고 차분하게 국정에 운영할 것이다”는 메시지를 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수상의 기쁨을 자제하는 게 수상에 따른 여유이?¼ 수도 있으나 현실적으로는 경제, 민생문제, 남북관계 등 국정 현안들이 철저한 대비를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측면도 있다. 청와대의 한 고위관계자는 “노벨상을 받았다고 기존 정책방향이 갑자기 달라질 수 있겠느냐”면서 “오히려 안정감있고 일관성있는 정책추진, 세심한 국정 챙기기가 국내ㆍ외적으로 더 신뢰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아무런 변화가 없을 수는 없다. 남북 정상회담에 이은 북?미 관계개선의 급물살, 그리고 노벨상 수상이 부지불식간에 우리 사회의 수준과 패러다임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김 대통령은 이 흐름을 국정운영과 정책에 반영시키기 위해 여러 구상을 할 것으로 보인다. 박준영 대변인은 “김 대통령은 경제와 민생문제를 챙기고 평화정착의 그랜드 디자인을 추진중”이라고 말했다.
한광옥(韓光玉) 비서실장을 비롯, 각 수석들도 대통령의 지시는 없었지만 이 기회를 활용, 현안들을 해결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노벨상 수상을 대외신인도의 제고로 연결짓는 노력이 전개되고, 중하위 공직자들의 인사 편중시비를 검증한다든지, 인권법 제정?국가보안법 개정 등의 속도를 올리려 하는 움직임 등이 변화의 모색이라 할 수 있다.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감성적으로는 겸손하게, 이성적으로는 국정운영의 방향을 확실히 잡을 것”이라며 “북?미 화해무드, 노벨상 수상으로 변하고 있는 사회의 통념들을 한 단계 높은 방향으로 바꾸는 작업이 이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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