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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노벨평화상 / '13전 14기'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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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통령 노벨평화상 / '13전 14기' 수상

입력
2000.10.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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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은 노벨평화상 후보에 추천된 게 올해로 14번째다. `6월 항쟁'등 민주화의 물살이 거셌던 87년에는 서독의 사민당 의원들이 김 대통령을 후보로 추천한 게 처음이다.당시 독일 유학 중이던 민주당 한화갑(韓和甲) 최고위원이 나름대로 역할을 했다. 한 최고위원은 빌리 브란트 전 서독 총리를 방문, 김 대통령의 노벨상 수상문제를 화제로 대화했다.

이 자리에서 브란트 전 총리는 “김대중씨를 존경한다”면서 “그러나 내가 노벨상을 받았기 때문에 중립을 지켜야 한다”고 말했지만 간접적으로 조력, 사민당 의원들의 추천이 있게 했다.

당시 김 대통령이 통일민주당 총재였던 김영삼(金泳三) 전 대통령과 야권 단일후보 협상에서 실패, 정권교체를 이루지 못한 사실이 노벨 평화상을 수상하지 못한 결정적 이유였다는 후문이다.

이 과정을 잘 아는 여권의 한 고위인사는 “그 해 한국의 민주화 열기는 전 세계적인 이슈였다”면서 “DJ가 YS에 후보를 양보했다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을 것이라는 게 노벨위원회 관계자들의 전언이었다”고 말했다.

이후에도 한 해도 거르지 않고 해외의 많은 유력인사들이 김 대통령을 추천했다. 98년에는 제프리 탐슨 뉴질랜드 국민당 당수, 게리 우다드 호주 맬버른 대학 교수, 덴 히데오 일본 참의원 등이 추천했으며 99년에는 미국의 남캘리포니아 대학 조지 다튼 교수, 피츠버그 카톨릭 대학의 윌리엄 커 총장, 토마스 포글리에타 주 이탈리아대사 등이 추천 작업을 주도했다.

김 대통령의 수상 가능성이 유력했던 때는 92년 대선에서 패배한 후 정계은퇴를 선언한 그 다음해인 93년. 김 대통령은 넬슨 만델라 아프리카 민족회의(ANC) 의장, 데 클레르크 남아공 대통령과 마지막까지 경합을 벌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추천 작업에는 김 대통령의 처조카인 이영작(李英作) 메릴랜드 주립대 교수의 역할이 컸다.

국내에서 정당 차원의 추천 작업은 95년이 처음. 이기택(李基澤) 당시 민주당 대표위원이 아태평화재단 이사장이었던 김 대통령을 추천하는 작업을 했다. 99년에는 민주당과 자민련 의원 등 107명의 서명으로 추천이 이루어졌다.

금년에는 국내에서의 추천 작업은 없었다. 정치적 오해를 피하기 위해서였다. 대신 아태재단 고문으로 있는 오스카 아리아스 산체스 전 코스타리카 대통령이 추천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 남아공의 데스몬트 투투 주교, 폰 바이체커 전 독일대통령 등도 적지 않게 조력했을 것이라는 게 주변의 귀띔이다.

/이영성기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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