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대 총선 선거사범에 대한 검찰 수사결과는 일단 전에 없이 엄격한 수사로 평가할 만한 모양새는 갖췄다. 무엇보다 기소된 국회의원이 25명이나 돼 15대때 10명의 두배가 넘는다. 당선효력에 영향을 미치는 후보의 회계 책임자와 사무장·가족도 13명이 기소되고, 재정신청이 받아들여진 당선자 2명을 포함하면 현역의원 40명이 당선무효될 가능성이 있다. 무더기로 당선이 무효되는 판결이 날 경우, 정치권에 엄청난 파란이 예상될 정도다.이런 결과는 입건된 선거사범이 15대의 두배나 될 만큼 선거가 혼탁했고, 이번만은 부정선거를 엄하게 다스려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를 생각하면 당연하다. 특히 선관위에 재정신청권이 부여돼 불기소처분에 신중할 수밖에 없는 검찰은 민주당 사무부총장의 발언 파문으로 편파수사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어서 단호한 수사결과를 내놓아야 할 압박감이 한층 컸을 것이다.
어쨌든 검찰이 수적으로나마 국민의 요구에 부응한 것은 다행이다. 그러나 입건된 당선자 수는 여야가 비슷한데 비해 기소는 한나라당 15명, 민주당 9명으로 크게 기울어 편파수사 시비가 이는 것은 유감이다. 물론 단순히 숫자만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당선무효될 여당의 심한 부정사례는 기소조차 않고, 야당은 사소한 것도 기소했다”는 야당 주장을 정치공세로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국민으로선 야당이 부정을 더 많이 저질렀다는 결론을 선뜻 납득하기 힘들고, 검찰이 진정 공정한 수사를 했다고 믿기도 망설여지는 것이다.
선관위와 정치권은 검찰이 불기소한 의원 20여명에 대해 법원에 재정신청을 낼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검찰 수사의 편파성 여부는 법원에서 가려지게 됐다. 그게 재정신청 제도를 둔 목적이니, 정치공방에만 매달릴 일은 아니다. 다만 검찰이 굵직한 의원들이나 선거비용 실사에 걸린 의원들을 불기소한 것은 돈선거 풍토를 뿌리 뽑겠다는 다짐과 거리가 먼 결과여서 아쉽다. 정치권과 검찰의 ‘숫자논쟁’은 이들에게서 선거부정 척결을 기대하기 어렵다는 선입견을 새삼 굳혀 줄 뿐이다.
결국 이제 국민이 한가닥 희망을 걸 곳은 법원 뿐이다. 대법원은 16대 총선에 앞서 선거재판을 1년안에 끝내고, 불법 당선자에게는 당선무효형으로 혼탁한 선거풍토를 바로잡겠다고 다짐했다. 선거를 비롯한 정치절차를 규율하고 합법성과 정당성을 담보하는 책임과 권한을 다하겠다는 단호한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정치권과 검찰을 믿을 수 없다면, 남은 기대는 법원에 쏠릴 수밖에 없다. 사법부가 유권자들까지 놀라게 하는, 흔들림없는 줏대와 위엄을 보이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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