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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썬데이 / 영혼을 다치게하는 엇갈린 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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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루미 썬데이 / 영혼을 다치게하는 엇갈린 사랑

입력
2000.10.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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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 날 위해 내 곁을 떠나주오/ 밤의 끝 어디든 나 거기 묻히리라/ 내 마지막 호흡 안고 집으로 돌아가네/ 나 어둠속 헤쳐나온 안전한 곳으로/ 우울한 일요일”여자는 노래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지금은 슬프지 않기 때문에. 그 여자가 눈물을 머금고 자신을 위해 남자가 만든 곡에 가사를 붙여 노래를 불렀다. 피아노 반주를 하던 남자는 알았다. 지금 그 여자가 얼마나 슬픈지를. 여자의 노래를 처음 들은 남자는 피아노 연주를 끝내고는 연주를 요청한 독일장교의 권총을 빼내 자살한다. 그 여자는 헝가리 여인 일로나 (에리카 마로잔)이고 자살한 청년은 그의 연인 안드라스 (스테파노 디오니시) 였다. 그리고 그들을 절망과 죽음으로 몰고간 독일장교는 일로나에게 청혼을 했다 거절당해 다뉴브강에 몸을 던져 자살을 시도했던 한스(벤 베커)였다. 1944년 헝가리 부다페스트 한 식당에는 이렇게 비극적인 역사가 숨어 있었다.

`글루미 썬데이 (Gloomy Sunday)' 는 한 편의 음악에 얽힌 이야기이다. 1935년 헝가리 의 레조 세레스가 작곡했다는 `글루미 썬데이' 는 저주의 곡이었다. 레코드가 발매된지 8주만에 헝가리에서만 무려 187명이 자살했다는 자살 송가다. 1936년 파리에서는 레이 벤추라가 이끄는 옐? 케스타라가 이 곡을 연주하면서 연주자가 모두 자살하는 충격적인 사건도 있었다. 단조의 선율은 영혼을 긁어내듯 낮게 흐느낀다.

그 하나만으로도 얼마든지 한편의 명작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글루미 썬데이' 는 그 노래 하나와 세 명의 남자와 한 여자, 그리고 식당이라는 작은 공간에서 인간의 갈망과 증오와 복수와 사랑과 비극의 역사를 이야기한다. 다뉴브의 푸른 물결과 역사의 영욕을 고스란히 간직한 부다페스트란 곳은 그렇게 음악 한 곡으로도 인간의 운명과 영혼을 불살라 버릴 수 있는 곳이다.

영화는 1988년 발표된 닉 바르코의 소설 `슬픈 일요일의 노래' 가 원작이지만 원작을 뛰어넘는 열정과 아픔을 지녔다. 독일의 롤프 슈벨 감독은 각본을 쓰면서 가상의 인물 일로나를 만들어 냈고, 그를 통해 시대와 개인의 운명의 알레고리를 치밀하게 파고 들어간다. 유대인 자보 (조아킴 크롤)와 그의 연인 일로나가 운영하는 작은 식당에 피아노 반주를 위해 눈이 깊은 청년 안드라스가 찾아오고, 첫 눈에 사랑에 빠진 안드라스가 일로나를 위해 곡 `글루미 썬데이' 를 만들어 연주하면서 세 사람은 사랑의 열병을 앓기 시작한다.

잃어버리기 보다 차라리 사랑의 반이라도 갖겠다는 마음으로 일로나를 공유하며 열병을 이겨낸 두 남자에게 찾아온 기쁨은 안드라스의 곡이 음반으로 나오게 된 것이고, 슬픔은 나치장교로 돌아온 한스의 비열한 야욕과 그 앞에서 굴욕을 참아야 하는 현실이었다. 3년전 목숨을 구해준 자보까지 배신해 가스실로 보내고 자신을 겁탈하는 한스를 보며 일로나는 “자살로 이끄는 `글루미 썬데이' 가 뭔가 말해주고 있다” 면서도 안드라스가 끝내 찾지 못했던 그 `뭔가' ~m 알게 된다. 인간은 누구에게나 존엄성이 있다. 그런데 그 최소한 존엄조차 무시당할 때 인간은 견디지 못한다.

늙어 식당을 다시 찾은 위선자 한스가 갑자기 죽는 것으로 시작해 6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그 존엄성을 짓밟은 추악한 인간과 역사를 들춰내고, 복수로 마무리하는 완벽한 구성이다. 올 바바리아영화제 최우수감독상 수상작으로 IMDB (인터넷무비 데이터베이스)에서 네티즌들로부터 `대부'에 이어 역대 영화사상 두번째 높은 평점을 받았다. 올 국내상영 외화 중 단연 최고작으로 꼽을 만하다. 21일 개봉.

이대현기자 leed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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