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의 미국 대통령선거가 사상 최대의 혼전이라지만 조지 W. 부시 후보와 앨 고어 후보가 벌이는 지지도 경주는 머리가 어지러울 정도다. 지난 3일 1차 TV토론 직후만 해도 고어의 우위는 막판까지 대세를 이룰 것 같은 기세를 올리더니 이번 주 들어 부시의 지지도가 선거 초기 때의 50%대를 넘어섰다는 조사결과가 다시 나왔다. 전당대회 기간 이전에 부시는 10%포인트 대의 우세를 유지했고, 그 이후 판세는 고어의 리드, 그리고 토론회를 기점으로 고어의 승리까지 점쳐지는 분위기였으나 이번에 부시가 재도약에 나선 것이다.진짜 여론이 이대로라면 혼전도 이만 저만한 혼전이 아니다. 혼전이라는 평가의 근거는 언론사와 여론조사기관의 지지도 조사결과이지만, 그렇다면 정말로 유권자의 선호가 며칠 사이 이렇게 왔다 갔다를 반복했다는 말일까. 우리나라 선거로 보더라도 마찬가지다. 어떤 개인의 지지성향이 어제는 이 후보, 오늘은 저 후보로 휙휙 바뀌었다는 설명은 선뜻 상식적이진 않다.
이 의문을 풀려면 여론조사 과정과 방식을 들여다 보지 않을 수 없다. 지지후보를 묻는 설문에 선뜻 의사를 밝히는 경우는 생각처럼 많지 않다. 그래서 결정을 못하는 부동층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고, 조사기관들qm 이 부동층을 되도록 줄여 지지성향을 알아내기 위해 다양한 방식의 기술적인 질문들을 준비한다. 직접적인 대답을 얻지는 못하더라도 응답자를 계속 `쥐어 짜는' 설문들을 제시해 지지 응답층의 폭을 늘리려는 것이다.
우리 뿐 아니라 미국도 똑같다. 얼마전 뉴욕 타임스의 칼럼니스트 윌리엄 새파이어는 널뛰는 미 대선의 지지도 조사 문제를 지적하면서 “우리는 우롱당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유례가 없는 미 대선의 혼전은 여론조사 공해와 선거결과 전망에 집착하는 언론의 경마식 보도 때문이라고 두 가지로 이유를 지적했다. 새파이어는 또 자신이 알게 된 미국 선거 여론조사의 내부 실태들을 개탄스럽게 `소개'하고 있다. 후보의 지지도를 보다 선명하게 만들기 위해 부동층을 지지도 결과와 같은 비율로 배분하는 `조작'이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응답자의 대답을 압박하느라 “오늘은 어떤 후보에게 기울고 있습니까”라는 식으로 묻는 게 작금의 선거여론 조사라는 것이다. 새파이어의 이 주장들은 단순히 한 칼럼의 견해라기보다는 마치 `폭로'기사를 읽는 느낌마저 주는 내용들이다. 새파이어는 자신의 친구인 선거조사 전문가로부터 요즘의 조사 응답률은 35%에 불과하다는 귀띔을 받았다면서 이를 “선거 여론조사의 더러운 비밀”이라고도 했다.
수치는 춤추지만 결국 이 수치들은 믿지 못할 장치들의 `자기플레이'일 뿐이라고 그는 말하고 있는 것인데, 이 글에서 미국사회에도 만연된 정치혐오 심리의 일닐? 을 엿볼 수 있다.
정치불신이나 정치혐오는 후보평가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무대로 자리잡은 TV토론이나, 정치광고의 역기능을 비판하는 시각에서도 읽힌다. 한 순간의 이미지나 한 토막의 멋진 임기응변 등이 지지율에 결정적 영향을 미치는 미디어정치에서 진실의 중요성은 점점 희박해진다는 냉소적 지적들이 바로 그런 시각을 반영한다. 1960년 TV토론의 효시가 된 존 F. 케네디와 리처드 닉슨의 토론에서 케네디는 미사일열세를 강하게 주장했지만 사실은 상당히 과장한 것이었고, 1980년 지미 카터와 로널드 레이건의 토론에서는 내용면에서는 카터가 앞섰다는 분석 등이 여론을 중심으로 움직이는 미디어정치의 허상을 지적하는 근거들이다.
대중을 통해 만들어지는 리더십이 그대로 대중을 위한 리더십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보는 생각들일 수 있다.
조재용 국제부장 jae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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