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었다 지우는 행위는 `나' 라는 존재의 확인입니다.” 금호미술관에서 `지움과 발견' 이라는 주제로 18일부터 11월 5일까지 개인전을 갖는 송경혜 한양여대 교수는 작가에게 그림이란 궁극적으로 작가 자신의 언어로 풀어낸 이야기임을 알려준다.“인간의 모습을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하다 사각형이란 형태를 생각하게 됐습니다. 사각형에 경험을 `나른다'는 행위를 부여한 것이죠.” 내면 깊숙이 가라앉아 있는 다양한 삶의 경험들을 그는 우표 크기의 무수한 작은 사각형으로 표현하고, 이를 다시 지우고 그리는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표현했다. 수많은 사연의 매개체를 사각형, 그 중에서도 직사각형으로 선택한 것은 그 형체가 융통성 있고 탄력적이라 느껴졌기 때문이다.
화려하고 강렬한 오렌지 빛은 가슴 속 깊이 앙금처럼 가라 앉아있던 삶의 경험을 이야기하는 은유적 색채가 됐다. 실제로 입었던 낡은 옷을 오려, 혹은 쓰다 남은 천 조각들을 자잘한 크기로 잘라 캔버스에 얹은 다음, 아크릴릭 물감을 반복해 덧발랐다. 물감은 접착제 기능을 하고, 화면은 고유한 헝겊의 이미지가 중화한 채 예상할 수 없던 화면으로 변했다. 겹겹이 침투한 물감은 그의 삶의 깊이이자 세계를 이해하는 폭이다.
머리 속에서 떨쳐버리고 싶은 기억들은 은색을 이용해? 지워 나갔다. “아무리 마루를 밀어도 닦아지지 않는 흔적이 남아있듯 우리 삶을 두르고 있는 황폐한 추억들은 붓질로 지우려 해도 지워지지 않았어요.” 그 때마다 그는 은색을 이용해 흔적들을 덮어 나갔다. 미술평론가 송미숙씨는 “갈수록 더해가는 표면의 중첩된 층 구조는 작가의 감성이 심화해 가고 있음을 시사한다”면서 “하지만 미니멀적인 색채나 가능한 은색을 이용해 무화(無化)시키려는 노력은 사연과 존재의 무게에서 해방하고 싶은 욕구로 해석된다” 고 말했다.
오렌지빛 외에 연두색, 갈색, 파스텔색 등의 색감을 통해 표현된 작가의 사연은 캔버스 뿐 아니라 네모난 철제 가방 위에도 담겨진다. 작가의 사연이 담긴 그림들은 워낙 텅빈 네모난 가방(입체)에서 출발했으며, 조각보 형태의 사각형 캔버스(평면)로 차츰 옮겨지고 있는 중이다. 금호미술관 1층에는 40개의 가방으로 구성되어 기차 철로를 연상시키듯 설치되고, 2층에서는 회화 35점이 전시된다. 100~150호의 큰 그림들이다. 그는 이화여대를 졸업하고 미국 하트포드 미술대학원에서 석사과정, 컬럼비아대에서 박사과정을 마쳤다. 2년 만에 갖는 개인전이다.
송영주기자 yjso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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