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부문인 `뉴커런츠'의 심사위원 자격으로 방한한 장웬(37) 감독은 낯이 익다. 붉은 태양, 그보다 더 붉은 약탈당하는 민족의 분노를 보여주었던 `붉은 수수밭'의 주연배우이기 때문이다.`홍등' `부용진' `진용' 등 볼만한 중국 영화에서 그의 얼굴을 보는 것은 한 때 즐거움이었다.
감독으로 변신한 그는 더욱 화려하다. 감독 장웬은 요즘 세계영화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중국 감독이다. 16세 소년의 성장영화인 1994년 데뷔작 `햇빛 찬란한 날들'은 대만 금마장상에서 최우수감독상, 작품상등 6개 부문을 석권했다.
그해 미국 시사주간 `타임'은 그의 영화를 `올해의 영화 10선'에 선정, 중국내 상영금지처분을 민망하게 만들었다. 6년만에 발표한 두번째 영화 `귀신이 온다'역시 중국정부의 허가없이 칸영화제에 출품해 심사위원대상을 차지했다.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시나리오 단계부터 정부의 허가를 받았다. 영화가 완성되고 나니 수십 곳을 삭제하라고 했다.”
`귀신이 온다'는 중국정부로부터는 중국인을 왜곡했다는 이유로 탄압 받았고, 일본에서는 일본을 비하했다는 이유로 수입이 거부됐다.
2차대전 말기인 1944년 중국 북부 오지마을에 찾아든 두 명의 포로와 마을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포로를 일본군에게 되돌려주고 식량을 얻으려는 마을사람, 그들을 학살하는 일본군, 그리고 이어지는 복수와 붙잡힌 마을사람의 사형집행관으로 나온 두 포로.
그의 영화 속 인물은 선과 악의 모호한 경계에 서 있으며, 역사에 대한 그의 새로운 시각을 엿보게 한다. “인간의 본질에 관한 영화이다. 이분법적인 선과 악에 대한 시각은 세상의 진보에 아무 도움을 주지 못한다. 그 둘은 끊임없이 갈등만 하게 된다. 산과 악, 과연 경계가 있을까.”
이런 `회의적' 태도는 첸 카이거와 장이모 같은 5세대 감독에 대한 불만도 가능하게 한다. 나이로 치면 5세대에 속하지만 그는 그들의 동양적 감수성도, 지아장커, 장위엔으로 대표되는 6세대의 개인적 감수성과도 거리가 있다.
”중국 속담에 `산이 크면 새도 많다'는 말이 있다. 인구가 많고 역사도 길고, 그래서 이야기도 풍부하고 감독이 많아 중국영화가 세계 영화계에서 성공하고 있는 것 같다”
자신의 직업은 후진을 양성하는 “중앙연극원 교수”라는 그를 어쩌면 대종상에서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 중국 3세대 소설가인 위화(余華)의 소설 `허삼관 매혈기'를 영화화하기로 한 영화세상(대표 안동규)이 감독겸 주연배우로 그를 낙점했다.
위화와 장웬은 절친한 친구 사이이기도 하다. 게으르기 짝이 없으며 생계를 위해 일을 하는 대신 피를 파는 중국의 룸펜 허삼관의 내면이 어떻게 영화로 표현될 지 궁금하다. “수공업처럼 영화를 만들고 싶다.”
부산=박은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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