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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프로기사는 공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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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철의 관전노트] 프로기사는 공인이다

입력
2000.10.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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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전 한국기원 4층 월간 바둑 편집실에 들렀더니 K기자가 황당한 표정으로 허공을 쳐다보고 있었다. 방금 전 대국실에 내려가 요즘 잘 나가는 신예기사 한 명에게 잡지 편집용 사진 촬영을 부탁했더니 일언지하에 거절하면서 벌떡 일어나 자리를 떠나 버렸다는 것.그는 “일부러 밖에 나가 찍자는 것도 아니고 대국이 끝난 후 그 자리에서 잠깐 포즈를 취해달라는 것이었는데 냉정히 거절당했다”며 아무리 생각해도 어이가 없다는 듯 쓴웃음을 지었다.

듣고 보니 금방 공감이 왔다. 국내 프로기사들은 일반적으로 매스컴에 너무 `소극적'인 편이다. 좋게 말하자면 너무 겸손이 지나치다고 할까. 대국 전에 임전 소감을 물어도 묵묵부답, 대국 후 대국 내용을 물어도 `잘 모르겠다'는 무성의한 답변이 대부분이다. 심지어 `찰칵'하는 사진기 셔터 소리가 `착각' 소리와 비슷하다는 어이없는 이유를 내세워 사진 촬영을 꺼리는 경우마저 있었다고 한다.

세계적인 스타 이창호만 하더라도 요즘이야 워낙 국내외 대회 경험이 많아져서 제법 농담까지 하는 수준이 됐지만 처음에는 정말 기대이하였다. 몇 년전까지만 해도 국내외 대회에서 인터뷰를 할 경우 몇 마디를 물어야 간신히 핸? 마디 답하는데 그것도 입안에서만 우물우물, 마치 모기소리 같아서 가까이서 귀를 대고 있지 않으면 도대체 무슨 소리인지 통 알아 들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너무 수줍어서 그런가 보다고 했지만 그런 일이 반복되자 나중에는 무언가 다른 개인적인 문제가 있지 않나 하는 의구심마저 들 정도였다.

물론 조훈현이나 윤기현 등 일부 노장기사들이나 신예기사들 가운데도 성격이 활달한 축은 어느 자리에서나 거침없이 자신의 생각이나 느낌을 표현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기사는 `수줍음'이 지나치다. 특히 최근 들어 20대 전후의 젊은 프로기사들이 대다수를 차지하면서 이같은 현상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대부분 너무 어린 나이부터 오직 바둑공부에만 몰두한 나머지 사회와의 접촉이 부족한데서 기인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다 보니 `프로기사는 오로지 대회에 나가서 상금만 따먹으면 그만'이라는 그릇된 선입견에 빠져 버린 것은 아닐까. 그렇다면 개인으로서나 바둑계 전체를 위해서나 매우 불행한 일이다. 프로기사가 스스로 공인임을 자각하지 못하고 바둑팬에게 최선의 서비스를 제공할 도덕적인 책무를 이행하지 않는다면 오직 현상금만을 좇아 헤매는 한낱 시정의 내기바둑꾼과 무엇이 다를 것인가.

/바둑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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