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게 다 세종대왕 덕분이지, 500년 우리 역사의 근간을 찾을 수 있었으니.” 9일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린 한글날 기념식에서 한글 발전의 공로를 인정받아 은관문화훈장을 수상한 원로 국어학자 이남덕(李南德?80) 선생은 축하하는 제자와 후배들에 둘러싸여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나이를 의심케 할 정도로 건강하고 활력에 찬 모습이었다. “말글을 통해 우리의 정신을 찾는데 한 평생 바쳤으니, 할 만큼 했다는 생각이 듭니다.”숙명여대와 이화여대 국문과 교수를 30여년 역임하면서 그는 우리말의 뿌리를 찾아 평생을 바쳤다. 음양철학을 이용한 의미체계와 음운법칙 분석을 통해 국어의 어원을 계통적으로 정리하는 한편, 국어와 일본어의 연관성도 밝혀냈다.
그에게 국어 어원 연구에 대한 열정은 민족 찾기에 다름없었다. 이화여전에서 이희승 박종홍 선생으로부터 민족의식에 눈 떴던 그는 1942년 경성제대 조선어문학과에 입학해 본격적으로 국어 연구에 뛰어들었다.
“우리시대는 암울했어. 일제시대, 전란기를 거치면서 청년기의 회의에 빠졌지. 인생이란 뭔가, 나는 누구인가 하고 말이야. 그때 민족이 바로 확대된 나라는 생각이 들었지. 그래서 민족의 근원을 찾아보려고 했어”
1986년 이화여대 국문학과를 정년퇴직한 후 ?그는 새로운 인생을 열었다. 불교에의 귀의였다. 행사장에도 고운 승복을 입고 나온 그는 현재 충남 계룡산 갑사 대자암에서 수행하고 있다.
“15세기 국어가 대부분 불교경전 내용을 담고 있어 자연스럽게 불교에 눈을 떴다가 1970년대 인도여행을 통해 깨우침을 받았어. 정년 퇴직후 제3의 인생을 시작하자고 결심했지.”
돌이켜 보면 그의 언어 연구나 민족찾기도 결국 삶이란 무엇인가란 근원적 물음에 대한 치열한 대응이었던 셈이다. 대학에서 30여년을 가르치면서 차현실 전혜영 이화여대 교수, 이경자 충남대 교수, 강정희 한남대 교수 등 많은 후학들을 길러냈다. 행사장에 모인 이들은 한결같이 “선생님의 넓고 깊은 학문의 세계에서 큰 배움을 얻었다”고 입을 모았다. 이경자 교수는 “선생님은 그 모든 것에서 초월하신 분이시다”며 “지(知)에 대한 열정은 나이가 들수록 더 깊어지시는 것 같다”고 말했다.
송용창기자 hermeet@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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