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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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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민준칼럼]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

입력
2000.10.0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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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관계에서 예전에는 상상도 못했던 일들이 현실로 나타나면서 많은 국민들이 심한 혼란을 겪고 있다. 남북화해와 협력, 나아가 통일이라는 대의에는 동의하면서도 북한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나타나고 있는 의견차이와 어긋나는 행보를 어떻게 봐야 할지 당황해 하고 있다.6.15선언이 나온 뒤 획기적인 남북관계의 변화를 실감하면서도 국민들은 어딘지 균형을 잃은, 살얼음판 위를 걷는 듯한 위험한 거래를 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일말의 우려를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일방적으로 끌려가는 것은 아닌지, 아무 것도 얻어내는 것도 없이 주기만 하는 것은 아닌지, 혹시 북한이 성에 차지 않으면 그럴듯한 핑계로 그 동안 이뤄진 성과와 약속을 하루아침에 뒤집어엎고 다시 대결국면으로 돌아가지나 않을지 등등.

국민들의 이런 혼란과 우려는 근거가 없지 않다. 남측은 적극 나서는데 북측은 주춤거리고 꼬리를 빼는 모양이다. 이산가족의 상봉문제만 해도 남쪽은 규모나 횟수의 제한을 받지 않고 일정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상봉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려고 하지만 북한은 확답을 피하고 있다.

2차 적십자회담에서도 북측은 남측의 이산가족 생사확인 및 서신교환 주장에 대해 역량의 한계 등을 이유로 시벴? 실시한 뒤 확대하자는 입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내달 실시될 이산가족 방문단 교환을 위한 양측 이산가족 200명의 명단교환도 이뤄지지 않고 있다. 경의선 복원사업도 남측은 이미 착공했으나 북측은 아직 가시적인 움직임이 없다.

북측은 그러면서도 얻어낼 것은 다 얻어내는 실속을 차리고 있다. 식량 60만톤의 지원을 약속 받고 남한기업의 대북투자도 끌어내고 있다. 남한인사의 방북초청도 가려서 하고 있다. 조선노동당 창건 55돌(10월10일)에 즈음해 남측 정당과 단체 및 개별 인사들을 평양에 초청, 남측을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외신까지 남북한의 화해조치의 불균형성을 두고 `일방통행로'란 표현을 썼을 정도이니 남측 국민들의 혼란은 무리가 아니리라.

그러나 북한 사정에 정통한 전문가들은 북측의 입장에서 이만큼 온 것만도 기적이라고 말한다. `경애하는 장군님'의 교시에 따라 움직이는 체제상 남측과 비슷한 속도와 성과를 요구하는 것은 무리라는 것이다. 김정일은 실용주의자이며 현실주의자일지 몰라도 하부조직은 그렇지 못하다.

김정일이 “미군 주둔을 인정한다”고 말해도 노동신문은 주한미군을 비난하는 사설을 실을 수밖에 없는 속사정도 있다. 북한 주민들에게 최근의 남북관계 변화는 충격이다. 잇단 교류행사에 북측의 당국자들도 정신이 없다. 북한전문가들의 말을 빌리면 “북한의 내적 혼란은 상상을 초월하는 것”이다.

앞으로 남북간의 굵직한 행사가 줄줄이 대기하고 있다. 이 달 중 북측 경제시찰단 및 한라산 관광단 100명의 방문이 예정돼 있고 임진강 수방대책 마련을 위한 남북 공동조사문제도 논의해야 한다. 11월엔 두 번째 이산가족방문단 교환이 이Xm 지고 중순에는 두 번째의 국방장관회담이 기다리고 있다. 생사와 주소가 확인된 남북 이산가족 300명의 서신교환도 해야 한다. 행사가 많은 만큼 남측을 실망시키고 혼란에 빠뜨리는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남측의 속도조절이 필요한 이유다. 북측이 내적 혼란을 탈없이 극복하지 못하면 6.15선언은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 남북관계의 개선은 북한을 다그쳐서 될 일이 아니다. 한반도에서의 항구적인 평화정착과 통일 성취를 위해선 북측이 감당할 수준의 변화를 요구하는 한편 남측에서도 확고한 공감대를 형성해두는 것이 중요하다. 북측에 당당하게 `NO'라고 말할 수 있는 힘은 남측 내부의 탄탄한 공감대에서 나온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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