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관 아기는 이제 놀라운 일이 아니다. 불임으로 고생하는 부부에게는 복음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8월말 미국에서는 아주 특별한 남자아이가 이 방법으로 태어났다. 누나(6살)의 생명을 구하기 위해 시험관 속에서 유전자 조작을 거쳐 만들어진 아이이기 때문이다(한국일보 5일자 1면 참조). 7살쯤이면 목숨을 잃게 되는 유전적인 골수결핍증인 누나를 위해 부모는 체외에서 수정시킨 15개의 배아를 유전학적으로 검사해 건강한 배아 2개 중 하나를 골라 어머니 자궁에 이식했고, 그 아이가 태어난 것이다. 그리고 그 아이의 건강한 세포가 누나에게 옮겨지기 시작했다.그 아기의 세포가 누나의 생명을 구할 수 있기 바랄 뿐이다.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끔찍한 가능성이 눈앞에 열려 있음을 알 수 있다. 이제 사람은 자기가 원하는 유전적 특성을 가진 아이를 일부러 만들고 그렇지 않은 경우는 배아상태에서 버리는 일을 시작한 것이다.
체코(당시는 오스트리아)의 브르노수도원의 수사였던 그레고르 멘델(1822~84)이 유전의 이치를 처음 발견한 것은 1865년이다. 완두콩을 키 큰 놈과 작은 놈, 그리고 콩깍지가 둥근 놈과 쭈글쭈글한 놈을 구별해 심어서, 그것들 사이에 2세와 3세 번식이 어떻게 나타나는지 실험적 연구를 통해 유qm 의 법칙을 발견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7년 연구 결과는 완전히 잊혀졌고, 그 후 과학을 그만 둔 멘델은 1884년 아마 행복한 수도원장으로 세상을 떠났던 것같다. 평생을 지낸 그 수도원의 원장으로 그는 다른 수도사들의 존경을 받았고 마을 사람들도 그를 사랑했던 것같으니 말이다. 이렇게 과학사에서 완전히 잊혀졌던 그는 `멘델의 법칙' 발견 35년, 그리고 사후 16년이 되던 1900년 3명의 생물학자에 의해 새삼 재발견됐다. 지금부터 꼭 100년 전에 멘델은 관속에서 살아 나왔고 그 후 유전학은 놀랍게 발달을 거듭해 이제 인간의 유전적 특성을 입맛대로 조정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아마 멘델은 최근 1세기 동안 그에게 갑자기 쏟아지는 조명에 눈뜨기조차 어려웠을 것같다. 그리고 누나를 구하기 위해 만들어 낸 새로운 생명을 보면서 그는 차라리 1900년 이전의 무명(無明=無名)시대를 그리워할지도 모르겠다.
박성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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