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70년대 한국은 물론 아시아를 대표하는 축구선수로 `아시아의 스트라이커'라는 별명을 얻었던 왕년의 스타와 라운드 기회를 가졌었다.프로축구팀의 감독을 맡고 있는 그와 클럽하우스 식당에서 첫 인사를 나누었는데 그에게서 진한 위스키냄새가 났다. 얼굴도 불그레하게 술기운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초면에 술 냄새를 풍겨 죄송합니다.
오랜만에 좋은 친구들을 만나 밤새 술 마시며 포커를 하고 나오는 길입니다”라며 소탈하게 웃으며 양해를 구했다. 밤새 술을 마신 사람 치고는 냄새를 제외하곤 멀쩡해 보였다. 아마도 그의 단련된 육체 때문일 것이다.
그는 첫 홀에서 핸디캡을 따지지도 않고 스트로크 플레이를 주장했다. “잘 치지는 못하지만 핸디캡 받아봐야 그냥 날아갑디다. 골프가 실력만으로 되는 건 아니잖아요? 실력이 달리면 돈으로 막지요.”역시 스포츠맨다웠다. 양 날개에 포진하며 폭발적이고도 화려한 드리블로 적진을 파고드는 그의 모습이 떠올랐다.
“오늘은 별수 없이 취타(醉打)작전으로 나가야겠군.” 이 한마디를 내뱉곤 그는 드라이버샷을 날렸다. 80대 초반을 친다는 그는 교과서적인 스윙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기본은 철저했다. ~?±글인 나머지 3명은 어느새 왕년의 대스타에 대해 경계심을 풀고 있었다. 나중에 실토했지만 모두들 `돈 잃을 염려는 없겠구만. 잘 하면 재미를 보겠는데'하고 기대를 품었다.
그러나 몇 홀이 지나가면서 3명의 기대는 깨어지기 시작했다. 시작부터 그의 술 냄새에 긴장이 풀린 동반자들은 자신도 모르게 술기운에 전염돼 제대로 된 샷을 날리지 못했다. 결과적으로 다른 동반자들이 그의 페이스에 말려든 셈이 됐다. 전반이 끌날 즈음 취타의 마력에 걸린 것을 깨달은 동반자들은 후반에야 제 정신을 차리고 게임에 임했다.
그늘집에서 그가 입을 열었다. “취타도 술을 이길 수 있을 때 위력을 발휘하지 술에 지면 아무 효험이 없어요. 술을 마시고 나서 다리가 흔들리지 않으면 버틸 수 있지만 다리가 흔들리면 제대로 샷을 할 수가 없더군요.”이 말에 동반자들은 미안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술 취한 사람을 대상으로 돈을 따려고 덤빈 자신들이 부끄러웠다.
이기지 못하는 술은 자신을 무너뜨린다. 남이 마신 술도 전염돼 골프를 망칠 수 있다.
/편집국 부국장 mjb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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