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동일 교수-홍윤기 교수철학 사학 문학 등 인문학은 인간의 근본 문제를 탐구하기 때문에 옛날부터 학문중의 학문으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최근 급격한 세태의 변화 속에서 인문학은 이제 학문의 맥 잇기를 걱정해야 할 만큼 큰 위기를 맞고있다. 평생을 국어국문학 연구에 몰두해 온 조동일 교수가 젊은 철학자 홍윤기 교수와 만나 인문학 위기의 실상과 발전방안 등에 대해 이야기했다.
- 인문학이 위기라고 합니다. 상황이 어느 정도입니까.
▦조동일 = 심각하죠. 인문학 하겠다는 사람도 없고, 인문학을 공부해도 일자리 얻기도 힘듭니다.
제가 몸담고 있는 서울대 국문학과의 경우, 3~4년 전까지만 해도 박사과정을 마치면 대부분 자리를 잡았는데 이제는 한명도 자리를 못 잡고 있습니다. 이렇게 가다간 10~20년 내에 대학사회에서 인문학 교수 자체가 없어질 판입니다.
▦홍윤기= 저도 박사학위를 받고 95년 귀국했는데, 자리를 잡기까지 4년이 걸렸어요. 그동안 서류만 13번 냈고 25개 대학에 문의를 했지요. 지난해 한 대학 교수로 채용된 분은 서류 값만 500만원이 들었데요.
대학에서 보니 인문학의 위기는 학과 선택에서 두드러지더군요. 학부제를 실시하는 대학은 학생들이 학과를 선택할 때 인문학부의 경우 영문학과 등 `인기학과'에만 몰리고 사학과, 철학과 등은 정원도 못 채웁니다.
한 대학에서 최소 정원제라는 것을 만들었답니다. 학과를 유지하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정원을 확보토록 하는 제도이죠. 이를 적용해 다른 학과에 지원하는 학생들을 강제로 철학과에 배정했더니 모두 자퇴를 했다더군요.
▦조동일= 이런 현상은 결국 인문학의 주체가 사라지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람이 있어야 학문을 하지요.
_ 원인이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조동일= 경쟁력이라는 시장경제의 원리를 대학에 도입했기 때문이죠. 저는 이것을 국가가 기술만능주의에 입각해 기술과 상품의 경쟁력을 선택한 대신 문화의 경쟁력을 포기하는 행위로 봅니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면 문화 콘텐츠의 원천은 창조력이고 창조력은 폭 넓은 인문교육을 통해 얻을 수 있다고 봅니다. 문화를 포기하고 기술만능주의로 가는 것은 `국가의 자살'이지요.
지금처럼 경쟁력만 따지면 외국 대학의 분교를 세우면 되지 한국의 대학이 필요하냐는 극단적인 주장이 나올 지도 모르지요.
▦홍윤기= 인문학자들도 반성해야 합니다. 한국의 인문학자들은 기본적으로 보따리 장사였습니다. 서구 학계의 성과를 수입해 전달하는 역할에만 머물렀죠.
연줄에 의한 패거리주의 등도 반성하고 해체해야 합니다. 인문학자들이 연구성과를 갖고 적극적인 사회참여를 하지 못한 것도 문제지요. 하지만 여건의 한계 탓이 더 큽니다.
▦조동일= 지금도 연구는 안 하면서 위기라고 떠드는 사람이 많습니다. 어찌 보면 `인문학 위기론'이 그들의 밥벌이 수단이 아닌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_ 근본적으로 인문학에 대한 사회적 수요가 없기 때문 아닌가요.
▦홍윤기= 아닙니다. 수요는 분명히 있습니다. 지난해말 밀레니엄붐이 한창일 때 한국일보 김범수 기자가 제게 게오르그 루카치의 역사철학서적 `역사와 계급의식'에 대한 비평을 묻더군요.
새 천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에 대한 답을 찾을 때 철학, 문학에 많이 기댄다는 사실을 그때 확인했지요.
요즘처럼 세계화가 가속화하는 시점에서는 더욱 그렇습니다. 지금의 세계화는 대체 어떻게 변할 지 알기 힘든 방향성 위기(orientation crisis)를 낳고 있거든요.
국가나 사회 등 개인을 보호하던 일체의 기구들을 무력화해 결국 개개인을 세계에 직접 노출시키기도 합니다. 이럴 때 개인은 정체성에 대한 설명과 해법을 어디서 찾을 수 있을까요. 바로 인문학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우리에게 있어 인문학은 `지구수비대'라고 생각합니다.(웃음)
▦조동일= 맞습니다. 세계화와 더불어 우리가 직면한 또 다른 변화가 정보화인데 이 정보화를 이끄는 힘이 무엇인가도 생각해야겠죠.
일제 지배를 거치면서 우리의 전통을 무시하는 관념이 우리 몸에 뱄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우리 조상들의 `문사철' 숭상의 전통을 공리공론이라 해서 근대화 실패의 원인으로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요즘 인도 보세요.
인도는 손보다 머리를 쓰는 민족이거든요. 우리와 비슷한 전통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후진국이라는 이 나라가 정보화가 도래하면서 컴퓨터 소프트웨어 생산의 강국으로 혜성처럼 등장했습니다. 그 핵심이 바로 철학입니다.
▦홍윤기= 이런데도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고 해서 학생들의 선택에 교육을 맡긴다는 것은 문제가 있습니다. 솔직히 우리나라 학생들이 언제 인문학의 가치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적이 있습니까. 선택은 그런 것에 대해 제대로 교육받은 후에 하도록 해야 합니다.
▦조동일= 우리처럼 수요자 중심 교육이라는 명목으로 교육을 시장원리에 그대로 맞기는 나라는 어디에도 없습니다. 신자유주의를 이끄는 미국도 90년대 초부터 기초교양과목을 2년간 필수과목으로 이수하도록 했습니다.
_ 그렇다면 위기에 대한 대안은 없습니까.
▦조동일= 정부에서 대규모 인문학연구소를 설립해 인문학 연구자들을 학예연구진으로 두고 그들에게 5~6급의 공무원 자격을 준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합니다.
저는 이런 방안은 효과가 없다고 봅니다. 예산의 대부분을 땅이나 건물, 집기 사는데 쓸 겁니다. 관료적 통제나 위계질서가 심해 제대로 인문학 연구를 할 수 없을 것으로 보고요.
`두뇌한국21(BK21)'도 문제가 많습니다. 대학원 학생에게 장학금을 줘 학자를 키워낸다는 것인데, 새로 박사를 길러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마나 누적되는 박사 실업자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연구교수를 두자고 제안하고 싶습니다.
연구교수는 연구 분야에 제한이 없고, 한 학기에 한 과목 정도 그것도 자유로운 주제로 강의를 함으로써 많은 시간을 연구에 매달릴 수 있습니다. 그리고 5년 주기로 그들의 연구업적을 평가하면 됩니다. 평가는 학술원 같은 곳이 맡으면 공공성을 갖게돼 평가를 둘러싼 잡음도 없어지지요.
▦홍윤기= 교수님의 생각이 대학 개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학과이기주의를 깰 수 있는 한 방법일 수 있겠네요. 그런데 연구교수제가 생기면 대부분의 학과 교수들이 연구교수로 옮기려 하지 않을까요.
▦조동일= 그렇지는 않습니다. 연구에 대한 부담이 만만치가 않거든요. 그리고 엄격한 평가를 통해 재임용 여부를 정하기 때문에 연구에 대한 열정이 많은 젊은 학자들에게 기회가 많이 돌아갈 겁니다.
아무튼 급한 것은 위기타령이 아닙니다. 이제 `위기담론'을 즐기는 것은 그만두고 제도 개선에 대한 구체적인 안을 내놓아야 합니다.
▦홍윤기= 사실 우리 인문학이 한번 해볼 때가 됐다고 생각하는 바로 이 시점에서 위기가 닥쳐 안타깝습니다. 선배 세대는 서양학문과의 격차, 식민지 경험에 의한 자기 전통과의 단절, 분단상황에 의한 이데올로기적 족쇄 때문에 학문적인 한계가 있었습니다.
반면 저희는 유학을 통해 서양학문을 익히고 한문교육 등을 통해 전통으로 복귀도 가능합니다. 사회에 대한 개입도 활발한 편이고요. 학문적 성과가 궤도에 오르기 직전입니다. 이런 상태를 이해해주고 정부와 사회가 인문학에 좀 더 관심을 가져 주길 기대합니다.
▲ 조동일 1939년 경북 영양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불문과와 국문과를 나왔고 국문과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계명대 영남대 한국정신문화연구원 교수를 거쳐 1987년부터 서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한국문학통사' `우리학문의 길' `인문학문의 사명'등을 냈다. 최근에는 인문학의 발전을 위해 정부와 학계등에 대책 마련을 촉구하고 있다.
▲홍윤기 1957년 강원 동해에서 태어났다.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했고 독일 베를린자유대에서 박사학위를 땄다. 지난해부터 동국대 철학과 교수로 재직중이다.
`변증법 비판과 변증법 구도' `하버마스의 사상' `이 땅에서 철학하기' 등의 책을 냈다. 철학이 현실에 개입할 수 있는 학문적 근거를 마련하고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철학의 역할에 대해 연구중이다.
사진 조영호기자
진행 박광희기자
khpark@hk.co.kr
정리 김기철기자
kimi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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