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미하던 유고 사태가 민중의 승리로 귀결됐다. 야당지지 군중이 수도 베오그라드를 장악한 가운데, 밀로셰비치 대통령은 베오그라드를 떠났다. 야당 지도자 코슈투니차가 국정 장악을 선언하고, 유럽연합(EU)등 국제사회도 잇달아 승인했다. 10년전 동구권을 휩쓴 무혈 민중혁명이 재현됐다는 평가다.무엇보다 우려하던 유혈충돌없이 사태가 마무리된 것이 다행이다. 유고는 이미 민족간 반목과 외세 개입으로 헛되이 많은 피를 흘렸다. 권력기반이 무너진 밀로셰비치가 폭력을 동원하지 못한 덕분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유고가 사회주의 체제 아래서도 몽매한 비문명국은 아니었음을 확인할 필요가 있다.
당장 관심은 밀로셰비치의 운명이다. 궁색한 처지이지만, 극단적 대응이나 비참한 말로를 예상하기는 이르다. 또 새 대통령 코슈투니차는 ‘정치재판’인 국제 전범재판에 넘기지 않겠다고 밝혔다. 서방도 증거없는 전범재판을 고집하지는 않을 것이다. 망명과 국내재판 회부 등의 기로에서, 여전히 의회를 장악한 지지세력이 주목할 변수로 보인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유고의 장래다. 민중봉기는 반독재 투쟁이라기보다, 피폐한 경제상황을 벗어나려는 열망의 분출이란 지적이 주목된다. 서방도 독재자를 몰아내는 대가로 대규모 지원을 약속했으나, 지난해 폭격으로 초토화한 경제를 복구하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서방지원이 기대를 배신할 경우, 진정한 민주화도 쉽지 않으리란 예상이다.
민주화와 회생의 계기는 마련했지만, 약소국으로 전락한 유고의 앞날은 밝지 않다. 역사의 변전속에 부침을 거듭한 세르비아와 유고 민족의 운명이 기구하다. ‘민중혁명’의 열기가 지정학적 숙명을 모두 가릴 수는 없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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