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너도나도 키 늘리기' 열풍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너도나도 키 늘리기' 열풍

입력
2000.10.07 00:00
0 0

`키 160㎝ 이상의 용모 단정한 여성'. 오랫동안 여성계의 비판을 받아 온 취업광고의 단골 문구다. 남녀고용평등법이 제정되면서 요즘은 사라졌지만, 아직도 작은 키 때문에 취업 과정에서 불이익을 당하는 경우가 많은 게 현실이다.결혼 상대자를 구하는 데도 키는 결정적 요인이 되기도 한다. 젊은이들의 채팅 현장에서도 마찬가지다. 몇마디 인사를 나누면 나오는 질문이 “키는요?”

이렇다 보니 키가 작은 사람이 받는 스트레스는 엄청나다. 특히 감수성이 예민한 청소년들이 또래들에게 느끼는 `롱다리 콤플렉스'는 상상을 초월한다.

`땅꼬마'는 학생들 사이에서 `왕따' 1순위가 되기 쉽다. 키를 키우려는 노력도 그만큼 눈물겹다. TV에서도 공공연히 키를 늘리는 과정이 방영됐다. 탤런트 이의정(25)은 이미 성장이 멈췄는데도 일본에서 엉덩이 뼈 교정까지 받아 뼈를 2㎝ 가량 키웠다.

■대학병원 성장클리닉 성업중

최근 웬만한 대학병원은 대부분 성장클리닉을 개설, 운영중이다. 전국적으로 30여 곳이 넘는다. 서울 B·S·J한의원, 대전 N한의원 등 한방 성장클리닉도 30여 곳이나 된다.

뼈를 일부러 부러뜨려 다리를 늘여주는 사지연장클리닉까지 합치면 100여 곳을 웃돈다. 키를 키우는 데 도움이 4?된다는 각종 식품과 자세교정클리닉, 운동센터, 인터넷 사이트도 줄을 잇고 있다.

이처럼 성장클리닉 붐이 이는 데는 `롱다리 신드롬'을 부추기는 대중매체의 영향도 크다. 키를 `개성'이 아니라 `우열'의 기준으로 보게 하는 사회 분위기가 한 몫 하고 있다. 특히 일부 방송에서 의학적으로 검증되지 않은 치료법을 비방인 양 소개하면서 과열 분위기를 조장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성장호르몬 치료의 허와 실

올해 초 서울 S병원 성장클리닉을 찾은 김모(13)양은 키가 158㎝로 반에서 중간 정도. 뼈 나이를 조사했더니 앞으로 2~3㎝ 가량 더 자랄 것으로 예측됐다.

의사는 여자 키가 160㎝ 정도면 결코 작은 게 아니라며 성장호르몬 치료 대상이 아니라고 했지만, 김양은 “키가 큰 애들을 보면 열등감 때문에 살기가 싫다”며 막무가내로 치료를 요구했다. 김양 어머니도 “요즘은 여자도 170㎝는 돼야 한다.

돈은 얼마든지 낼 테니 키를 키워달라”고 고집했다. 김양은 월 182만9,000원이나 하는 성장호르몬 치료를 6개월째 받고 있다.

양방에서 사용하는 호르몬 주사는 주로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만성 신부전증 등 병적 원인으로 키가 크지 않을 때 효과가 있다. 유전적으로 키가 작은 아이들의 경우 효과에 대해 논란이 있지만, 의사들은 치료를 권하지 않는 게 일반적이다.

문제는 유전적으로 키가 작은 어린이들이 호르몬 치료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는 데 있다. 서울 S병원 성장클리닉을 찾는 어린이 중 질병으로 성장호르몬 주사가 꼭 필요한 환자는 20~30%에 불과하다.

나머지 70~80%는 키가 정상이거나 유전적으로 작은 경우다. 이 클리닉 한 관계자는 “유전성 저신장은 치료 효과가 별로 없다고 해도 무조건 치료를 받겠다고 매달리는 부모가 많아 안타깝다”고 말했다.

성장호르몬 치료는 여자 만 13세 이전, 남자 만 15세 이전으로 사춘기(2차 성징)를 넘기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 뼈 속의 성장판이 이 무렵이면 닫히기 때문이다. 올해 7월부터 성장호르몬 결핍증, 터너증후군, 투석 중인 만성 신부전증 환자에 한해 의료보험이 적용된다.

이 경우 본인 부담은 약값의 30%. 유전성이거나 체질성 성장지연은 100% 본인 부담(연간 550만~2,200만원)이다. 뼈가 자라고 있는 동안 적어도 6개월 이상 매일 밤 투여해야 하며 뼈의 성장판이 닫히는 사춘기까지 계속 맞아야 하는 불편이 따른다.

■후유증 많은 일리자로프 수술

정형외과에서 하는 `일리자로프 수술'은 다리 뼈를 일부러 부러뜨린 다음, 뼈 간격을 넓혀줌으로써 새 뼈가 하루 1㎜ 씩 자라게 하는 치료법. 원래 손가락, 발가락이 짧거나 선천적으로 한쪽 다리가 짧은 기형, 교통사고 등으로 뼈 중간이 부서져서 없어진 환자 등이 대상이다.

하지만 `기형 치료기술'이 `미용수술'로 둔갑한 게 현실이다. 실제로 170㎝가 넘는 사람도 수술을 받는 등 미용 목적으로 키를 키우려는 사람에게 남용되면서 부작용이 심각하다. 의사들은 “이 수술로 키를 늘일 수는 있지만 다 자란 남성이 155㎝, 여성이 150㎝ 이하일 경우에만 선별적으로 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상계백병원 사지연장클리닉 황재광 교수는 “이 수술은 염증과 통증, 뼈의 변형, 주위 관절의 운동제한 등 후유증이 많은 만큼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며 “키가 크려면 뼈만 자라는 게 아니라 신경, 근육, 혈관 등 여러 가지 주변 조직도 같이 자라야 하기 때문에 생리적으로 무리가 따른다”고 말했다. 등산 등 힘든 운동을 하는 데도 기능상 문제가 있다.

비용도 만만치 않다. 소아마비나 교통사고 등 의료보험이 적용되는 경우는 200만~1,000만원이지만, 의료보험이 적용되지 않는 미용 목적의 수술은 1,500만~2,000만 원 선이다. 성인이 3㎝를 늘이려면 대략 5~6개월이 걸리기 때문에 사회활동에도 제약이 많다.

■한방 성장촉진제의 효능은?

전국의 대형 약국에는 롱키본, 서정단, 롱가드, 키커정, 키플러스 등 10여 가지의 성장촉진제가 나와 있다. 제약회사가 만든 것도 있지만, 한의사가 직접 회사를 차려 시판 중인 제품도 많다.

대부분 한약제재와 비타민, 칼슘류를 혼합한 건강보조식품에 불과하다. 가격은 3개월 분에 20만~40만원선. 최소 6개월 이상 복용을 권하기 때문에 100만원 이상의 비용이 드는 셈이다.

한방 성장클리닉도 우후준숙처럼 생기고 있다. 서울 C한방병원 성장클리닉은 6개월 등록비가 300여만 원인데도 현재 2,000여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방학 때면 환자가 몰려 일요일까지 연장 진료를 할 정도로 호황이다.

효과는 어떨까. 성장 환약을 판매하고 있는 서울 S한의원은 1년에 8~12 ㎝ 정도 키가 자란다고 선전한다. 심지어 이미 성장이 멈춘 성인에게도 효과가 있다고 주장하는 한의원까지 있다. 하지만 복용해 본 사람들의 반응은 신통치 않은 경우가 많다.

이들 식품의 효능에 대해 객관적인 검증이 부족한 것도 문제로 지적된다. 소아과 전문의들은 대부분 “이들 제품은 치료제가 아니라 단순한 영양식품에 지나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반응이다.

고재학기자

goindol@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