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는 6일 전날의 시위를 잊은 듯 거대한 파티장으로 돌변했다. 민주주의에 굶주렸던 시민들은 지난달 24일 대선투표 이후 2주일 이상 계속된 시위의 절정을 만끽하면서 “피의 시대 종언”을 선언했다.축하 파티는 야권 단일 대선 후보인 보이슬라브 코슈투니차가 새로운 유고 대통령으로 취임한 6일까지 계속됐다.
전국 각지에서 모인 50여만명의 시민은 5일 밤 거리로 나와 휘파람을 불고 유고 국기를 흔들며 승리를 자축했다.
한 젊은 여성은 진압 경찰에게 키스를 한 뒤 페퍼포그 차량 위에 올라가 춤을 추었다. 200만 인구의 베오그라드 거리마다 밴드가 출연했다.
일부 시위대는 경찰로부터 빼앗은 곤봉과 방패 등을 착용한 채 거리에서 즉석 파티를 열고 술잔을 돌렸다. 아직도 분노를 삭이지 못한 일단의 젊은이들이 시내를 돌아다니며 밀로셰비치 정권과 관련된 모든 시설을 파괴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이날 새벽 지방 도시 차차크에서 3차례나 검문검색을 뚫고 베오그라드에 온 라도예비치 산드라(32)는 흥분된 어조로 “우리에게 이런 엄청난 힘이 있을 줄은 정말 몰랐다”면서 “오늘밤은 도저히 잠자리에 들 수 없다”고 말했다.
환희의 절정은 코슈투니차의 승리 선언. 그가 “안녕하세요, 자유 세르비아 시민여러분”이라고 말문을 열자 베오그라드 시청 앞 광장에 모인 수십만 시위대가 열광했다.
시민들은 밀로셰비치에 대해 “슬로보단, 당신을 죽이고 나라를 살려라”고 소리쳤다. 코슈투니차는 전날까지만 해도 정권 홍보에만 골몰했던 국영방송을 통해 새 시대의 출범을 선언했다.
국영 RTS는 시위대에 점거당한 후 다시 방송을 재개하면서 “이 방송은 새로운 RTS 방송입니다”라는 자막을 내보냈다. 과거 밀로셰비치 대통령의 나팔수 역할을 했던 폴리티카 TV는 “폴리티카는 자유롭다.
폴리티카는 국민의 것이다”고 선언했다. 관영 탄유그 통신은 코스튜니차를 “유고슬라비아의 선출된 대통령”이라고 보도했다.
우려했던 대형 불상사도 일어나지 않았다. 5일 오후 연방의회 진입과정에서 소녀 1명이 목숨을 잃고 70여명이 부상한 것으로 전해졌을 뿐이다.
시위를 저지하라는 명령을 받은 경찰은 헬멧을 벗고 시위대에 합류하는가 하면 시위 진압용 방패를 옆에 내려놓았다. 경찰은 의사당 진입과정에서도 수십발의 최루탄을 쏘는데 그쳤고 순순히 시위대에 길을 터줬다.
이날밤 유고 연방군은 거리에서 벌어지는 사태에 개입하지 않겠다고 밝혔고, 경찰은 재산 보호와 범죄예방에만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시내 어느 곳에서도 경찰이나 군이 재집결하지 않았다. 시내 곳곳을 막고 있던 바리케이드도 사라졌다.
야당과 시민들은 격렬한 시위 과정에서도 냉정을 잃지 않았다. 코슈투니차는 시위가 자칫 폭력사태와 혼란으로 변질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이 도시의 돌 하나라도 훼손하지 말라.
이는 아름다운 르비아의 일부이다”며 시민들에게 평정을 되찾을 것을 호소했다.시민 카타리나 밀로셰비치는 밀로셰비치 대통령과 친척이 아님을 강조하며 “밀로셰비치 정권이 끝난 것은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이라며 “나는 이 모든 것이 냉정하게 기분좋은 승리로 마무리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베오그라드 외신=종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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