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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인의 原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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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정치인의 原罪

입력
2000.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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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자금은 고구마 줄기와 흡사하다. 한 뿌리에 주렁주렁 매달린 고구마처럼 연루된 사람이 많고 그 갈래가 복잡한 탓이다. 실제로 정치자금의 경우, 검찰이 수사를 벌이면 대개는 그런 형국으로 진행된다. 먼저 줄기를 찾아내고 그줄기에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연루자를 캐낸다.■검찰은 엊그제 지난 96년 15대 선거자금으로 보이는 뭉칫돈의 흐름을 발견, 수사가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이제부터 캐내기만 하면 연루 정치인들이 고구마처럼 주렁주렁 매달려 나올 판이다. 고속철 로비자금 흐름을 추적하다가 ‘우연히’ 발견했다는 데, 우연이 아닐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더러는 있다. 일각에선 검찰이 일찌감치 고구마 줄기를 발견해 놓고, 이제와서 캐내려 한다고 보고 있다. 고구마 줄기를 발견하게 된 경위야 어떠하든, 앞으로 고구마를 캐내는 과정이 더욱 투명해질 필요는 있다. 검찰의 태도에 달려 있다.

■야당은 벌써 아우성이다. 공연히 과거 사건을 들쑤셔 야당의 목줄을 죄려 한다고 흥분한다. 그도 그럴것이 문제의 뭉칫돈이 선거자금이라면, 연루자는 모두 야당이 될 판이다. 계좌의 주인으로 알려진 황명수씨는 당시 신한국당 선거대책위 부의장으로 실세 중 한 사람이었다. 그는 지금 말을 갈아 타 민주당의 당무위원겸 고문직을 맡고 있다. 이른바 ‘정권의 우산’속에 쏙 들어가 있지만, 그 처지가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다. 공교롭게도 이한동 총리도 그때 그와 함께 신한국당 선대위부의장직을 맡았다.

■여당은 뭉칫돈의 흐름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말은 맞다. 그러나 막상 민주당도 정치자금, 특히 선거자금의 문제에서 자유롭다고 할 수는 없다. 정치인에게 있어 정치자금은 따먹지 않을 수 없는 금단의 사과와 같다. 정치인은 숙명적으로 원죄(原罪)가 있는 셈이다. 그래선지 민주주의가 발달한 나라에서도 정치자금 스캔들이 심심찮게 터져 나온다. 우리의 정치인들이 원죄의 굴레에서 언젠가는 해방되어야 한다. 안타깝지만 그 시기가 빨리 올 것 같지는 않다.

이종구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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