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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책의날/ 각계 5인 '내가 책을 읽는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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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은 책의날/ 각계 5인 '내가 책을 읽는 이유'

입력
2000.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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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출판계에는 비상이 걸렸다. 가뜩이나 책을 안 읽는 `가을'에다, 4일간의 추석 연휴, 거기에 4년에 한번씩 찾아오는 올림픽이 겹쳤기 때문이다. 좋은 날씨에 놀러가야지, 오랜만에 만난 친지들과 정담을 나눠야지, 우리 선수들이 금메달 따는 것 봐야지 하다 보면 책읽기는 도저히 불가능하다는 것이다.우리나라 사람들의 독서율이 낮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출판연구소가 조사한 지난해 성인남녀의 한 달 독서량은 채 한 권이 되지 않았다. 연평균 독서량이 9.3권이었다. 특히 초등학생들의 한 학기(6개월) 독서량이 23.3권으로 96년에 비해 4.9권이 줄어들었다. 인터넷의 보급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이러다 보니 `인문학의 위기'니 `출판계 고사 위기'니 하는 한탄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국민이 책 읽기를 멀리할 때 현 정부가 외치는 `지식정보사회'는 한갓 꿈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11일 책의 날을 앞두고 독서생활을 실천하는 각계 인사로부터 인터넷 시대에 책을 읽는 이유와 책 읽기의 즐거움에 대해 들어봤다.

▩이화여대 불어불문학과 김치수(60) 교수

매일 저녁, 자리에 눕기 전 꼭 단편소설이나 시집 한 권을 읽는다. 책 읽기가 나의 직업이기도 하지만, 한 권의 책마다 내 삶에 새로운 그 무엇을 일Ym 워주니 늘 새로운 기분이다. 잊고 있던 아릿한 세계가 불쑥 찾아오는 것, 그것이 책읽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우리집 아이들도 책을 무척 좋아한다. 부모들이 스스로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면 아이들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게 되는 것 같다.

요즘 사람들이 책을 많이 읽지 않는다고들 하지만, 사실 책은 더 많이 팔리고 있다. 문제는 진지한 책을 읽지 않는다는 것인데, 인문학이 보다 적극적으로 여기에 대응해야할 것이다. 영상이나 인터넷 등 다른 매체도 적극적으로 수용하면서 현대적 감각으로 접근한다면 진지한 책읽기도 새롭게 살아날 수 있을 것이라고 본다.

▩한길사 김언호(55) 사장

사상적인 이론서든, 감성적인 소설이든 책은 저자가 자신의 생애를 걸고 만들어낸 산물이다. 나는 남의 체험과 사상, 정신을 간접체험하기 위해 책을 읽는다. 우리는 책을 통해 추상적인 지혜가 아닌,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지혜를 얻을 수 있다.

한국인은 감성적이라는 얘기를 많이 한다. 이는 한국인이 예술과 노래와 놀기를 좋아한다는 칭찬도 되는 반면, 이성과 논리성이 부족하다는 비판도 된다. 민주주의를 하려면 이성적 논리가 반드시 필요하고 이것은 바로 풍부한 책읽기에서 온다.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에는 그 얼마나 많은 민주국가의 전략과 전술이 들어있는가. 요즘 정치인의 수사학이 부족한 이유도 책읽기가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정한 인터넷 사회 역시 독서가 뒷받침하는 상상력 없이는 불가능하다고 본다.

▩서울대 경제학과 정운찬(52) 교수

대학에 갓 들어왔을 무렵 읽었던 J.R.힉스의 `사회 기구(Social Framework)'가 나의 좌표를 밝혀주었다. 현실과 이론이 조~r? 를 이루는 경제학의 세계를 쉽고도 알차게 설명해줬다. 초보 경제학도의 눈과 귀를 틔우게 해 준 책으로 여전히 기억에 남는다. 요즘은 `렉서스와 올리브나무'를 읽고 있다.

예전에는 읽고 싶어도 책이 많지 않았는데 요즘 학생들은 온라인 상으로만 지식을 얻으려고 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 온라인 상으로 정보를 얻는 것은 건강에도 좋지 않을 뿐 아니라 정독하기도 힘들다. 내가 시대에 뒤떨어진 것인지 몰라도 종이책을 정독할 때 그 참 의미를 제대로 맛 보는 게 아닐까 싶다.

▩한글과컴퓨터 전하진(42) 사장

업무상 컴퓨터 관련서를 요점만 간추려 읽지만 얼마 전 읽은 김용옥 교수의 `노자와 21세기'는 아주 꼼꼼하게 읽었다. 그 책을 읽으면서 우리 삶의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사색할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을 해야 한다'는 식의 당위성만이 강조되는 이 사회에서 인간과 삶을 근본적으로 되짚어볼 수 있는 기회였다.

인간은 남이 정한 기준에 매달려서는 만족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나 역시 `한컴' 사장이기 때문에 행복한 게 아니라, 여러 다양한 기준에서 만족감을 찾기 때문에 행복하다. 독서 역시 이러한 의미에서 나에게 심적인 즐거움을 준다. 앞으로는 주한 미국상공회의소 회장 제프리 존스가 쓴 `나는 한국인이 두렵다'를 읽고 싶다. 그 책에는 우리 자신은 모르는, 우리의 장점들이 나열돼 있을 것 같아 꼭 읽고 싶다.

▩시드니올림픽 사격 은메달리스트 강초현(18·대전 유성여고 3)

지난 달 시드니에 갈 때 `한 권으로 읽는 고려왕조실록'을 가지고 갔다. 전에 읽었던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이 매우 재미있었기 때문에 일부러 고른 것이었다. 8?연습과 경기 때문에 책의 3분의 1밖에 못읽었지만 책을 읽으면서 심리적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시드니에 오기 전에는 이은철 선배님이 선물한 `라벤다의 향기'도 읽었는데 내용이 좀 어려웠다.

책은 어른들이 말하는 것처럼 마음의 양식인 것 같다. 전에 읽은 `아버지'와 `가시고기'도 슬픈 내용만큼 내 정신수양에 큰 도움이 됐다. 역사 책은 소설보다 재미는 없지만 배울 게 많아 앞으로도 계속 읽어갈 계획이다. 훈련 때문에 많은 책을 읽을 수는 없겠지만 베스트셀러만이라도 꾸준히 읽고 싶다.

김관명기자 kimkwmy@ hk.co.kr

송용창기자 hermeet@ 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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