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가이드라인 제시로 퇴출 대상 기업 선정이 초읽기에 들어가자 재계의 얼굴이 굳어졌다.재계는 정부가 한계기업들을 무리하게 퇴출시킬 경우 경제에 상당한 악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것으로 우려하면서 특히 기업 합병시 고용의 포괄적승계의무 완화 등의 제도적인 장치를 정부가 마련해 주지 않은채 무리하게 구조조정을 요구하는 것에 대해 상당한 불만을 표시하고있다.
현대의 경우 25개 계열사 가운데 금감위의 부실판정 가이드라인에 저촉되는 계열회사는 한 곳도 없다고 밝혔다. 현대건설의 경우 이미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과 재무구조 개선협약을 체결, 연말까지 1조4,000억원의 부채를 줄이기로 했고 현대석유화학도 일시적인 유동성 위기를 겪고는 있지만 올해 상반기 영업호조로 이자를 내고도 152억원의 흑자를 기록했다고 말했다.
삼성 역시 부실 판정을 받을 만한 계열사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단지 삼성상용차의 경우 최근 3년간 이자보상배율 기준으로는 1 이하지만 총 신용공여 규모가 500억원 이하여서 부실판정 심사 대상기업이 아니라고 삼성 관계자는 밝혔다.
LG는 LG산전 부채비율이 600%이지만 올해안에 보유 유가증권 매각 등을 통해 부채비율을 대폭 낮추는 자구계획을 내놓았고 매출이익도 2,000억원을 넘어설 전망임을 강조했다. m
SK 룹 전체 부채비율은 160%대로 비교적 양호하지만 SK건설의 장래는 장담하지 못한다.
쌍용양회의 경우 건설 경기의 장기 침체에 따른 영업 부진으로 금융 비용을 감당하기 어려운 실정. 쌍용측은 그러나 “시멘트 사업 특성상 정부 재정이나 건설 경기 의존도가 크지만 대주주를 바꾸는 과감한 구조조정의 성과를 제대로 평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아건설은 금감위의 부실판정 가이드 라인에 저촉돼 퇴출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금융권이나 재계 관계자들의 시각이다. 하지만 동아건설은 채권단에 자구안을 제시하면서 신규 추가 자금 지원을 요청했고 경영권 분쟁도 해결된 만큼 회생 가능성이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대우전자의 경우 유동성 위기에서 완전히 회복됐고 디지털 가전, 멀티미디어 제품 등의 성장 가능성이 커 회생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주장했다. 워크아웃중인 고합 측도 “채권은행이 회생 가능성이나 미래 가치를 감안해 판단할 사항”이라며 “화섬업종이 처한 상황이 좋지 않지만 부채와 적자가 점차 줄고있어 큰 문제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조재우기자 josus62@hk.co.kr
■은행들 `옥석 가리기'착수
은행들은 여신정책부, 여신관리부, 심사부 등을 중심으로 그동안 거래해 온 대기업의 재무 현황과 여신 현황에 대한 정밀 분석작업에 들어갔다.
금융계 관계자는 “98년의 경우 정부가 은행들에게 대기업들을 정리하라고 하면서 부실은 모두 은행이 떠안아야 한다는 입장이어서 실제 결실이 미미했었다”며 “그러나 이번에는 부실기업 퇴출로 인해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m 비율이 10% 미만으로 떨어질 때는 공적자금을 보전해주기로 해 보다 객관적인 입장에서 기업의 퇴출 여부를 판단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60대 계열 중 삼성LG 한화 한솔 대림 한진 효성등 17개 그룹의 주채권은행인 한빛은행은 대상 기업이 많아 10월 내에 제대로 퇴출 기업을 결정할 수 있을 지 부심하고 있다.
한빛은행 관계자는 “현재 시점까지의 재무상황 만을 놓고 기업 퇴출 여부를 결정하라면 간단한 일이겠지만 종합적인 경기 전망까지 감안해 기업의 생사를 갈라야 하기 때문에 벌써부터 진땀이 난다”고 실토했다.
서울은행은 60대 계열이 동국제강 동부 조양상선 대한전선등 4곳에 불과, 비교적 여유가 있으나 동아건설 처리문제로 벌써부터 골머리를 앓고 있다. 서울은행측은 “동아건설이 최근 5억달러짜리 리비아 대수로 공사를 수주하는등 아예 절망적인 상태가 아니어서 처리 방향을 놓고 부심하고 있다”고 말했다.
/박정규기자 jkpark@hk.co.kr
■정기홍 금감원부원장 일문일답
정기홍 금융감독원 부원장은 5일 부실기업 판정 기준을 발표하면서 "채권단으로부터 출자전환을 받는 기업에 대해서는 대주주 책임을 묻기 위해 감자를 실시하거나 경영권을 박탈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기업 판정시 금융기관이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빠질 우려가 있는데.
”모럴 해저드를 방지하기 위해 정부가 객관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다. 금융기관이 자율을 악용하거나 부실판정에 소극적일 때는 사후 점검해 책임을 물을 방침이다. 사안에 따라 은행장 경질도 가능하다.”
-이번 조치로 인해 금융권에 추가 손실이 발생할 가능성은 없나.
”추가 손실을 꺼려 지금까지 부실 기업들을 떠안고 온 측면이 있다. 따라서 추가 손실에 대해 일정 부분 면책을 해주는 등의 방법으로 은행들을 독려하겠다.”
-신자산건전성분류(FLC)기준 `요주의 이하', 이자보상배율 1미만 외에 다른 부실판정 기준이 있는가.
”3년 연속 결손률이 증가하거나 운전자금 댐? 출이 매출액의 4분의 3을 초과하는 경우 퇴출될 수 있을 것이다. 이밖의 세부기준은 개별 은행이 정할 것이다.”
-무더기 퇴출이 이루어질 경우 자금시장에 충격이 예상되는데.
”자금시장에 적지않은 충격이 가해질 것으로 우려된다. 정부는 자금시장 동요를 최소화할 수 있는 여러가지 방안을 마련하고 있다.”
-몇 개 기업이 정리될 것으로 보는가.
”추측하기 힘들다. 다만 평가대상 기업(150~200개) 가운데 정리할 기업보다는 살릴 기업이 훨씬 많다는 것은 확실하다.”
남대희기자
dhna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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