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천수이볜(陳水扁) 정부가 3일 밤 탕페이(唐飛 ·68) 행정원장이 취임 4개월 만에 전격 사임함으로써 집권 이후 최대 위기에 봉착했다. 국민당 출신인 唐 행정원장은 그 동안 陳 총통이 표방한 `전민(全民 전체국민)정권'의 상징적 존재로 여소야대 정국의 안전판 역할을 해왔었다.陳 총통은 4일 唐 원장의 후임으로 자신의 정치 참모였던 민진당의 베테랑 정치인 장쥔슝(張俊雄·62) 행정원 부원장을 임명, 사태 수습에 나섰다. 그러나 중국시보(中國時報) 등 대만 언론들은 唐 원장 사퇴가 대만 정국에 `핵폭풍'을 몰고 왔다고 논평, 이번 파동으로 정국 불안은 물론 경제위기와 양안관계 악화 등 대형 악재들이 이어질 것으로 우려했다.
唐 원장은 이날 사임배경으로 건강악화를 들었으나 제4 핵발전소 건설 문 제문제를 둘러싼 陳 총통과의 불화가 직접적인 도화선이 됐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陳 총통은 총통 선거 당시 공약인 핵발전소 건설 중단을 추진한 반면, 唐 원장은 건설 중단 시 사퇴하겠다고 경고해왔다. 현재 30%의 공사 진척도를 보이고 있는 이 발전소는 과거 국민당 정권의 야심작이었다.
거국 정부가 와해됨으로써 이제 민진당은 정치 경제 외교 등 현안을 혼자 힘으로 풀어야 한다. 그러나 행정 경험이 일천하고 인재가 부족한 민진당이 실타래 처럼 얽힌 여소야대의 정국을 헤쳐나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분석이다.
특히 국민당 시절 국방부장으로 군부의 지지를 얻고 있던 唐 원장의 사퇴로 독립문제를 둘러싸고 민진당과 군부 간에 갈등이 발생할 가능성도 베제할 수 없다. 또 당정의 `빅4'인 총통, 부총통, 행정원장, 민진당 주석 모두가 독립을 지향하는 인물 일색이어서 중국을 자극할 가능성도 한층 높아졌다.
정국 혼란의 영향으로 증시 폭락세가 지속되는 등 금융불안도 陳 정권의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정부가 최근 증시 부양을 위해 5,000억 대만달러(약 1억6,000만달러)의 기금을 승인했지만 증시는 신정부 출범 이후 무려 40%나 폭락했다. 대만 정부는 이날 唐 원장 사임 여파를 최소화하기 위해 주가변동허용폭을 7%에서 3.5%로 축소했으나 가권(加權) 지수는 전날 보다 2.4%나 빠져 심리적 저지선인 6,000포인트가 무너졌다.
대만 중앙통신은 이날 정국 불안과 양안관계 악화 등을 우려,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등으로 출국하려는 사람들이 크게 늘어나 여행사들에 문의전화가 빗발 쳤다고 보도, 대만 국민들의 민심이 크게 동요되고 있음을 전했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장쥔슝 신임 행정원장 - 민주화 앞선 6선 정치인
장쥔슝(張俊雄·62) 신임 대만 행정원장은 陳 총통과 함께 민주화 투쟁에 앞장서 온 변호사 출신의 6선 정치인.
대만대 법률학과 출신인 그는 계엄령 치하인 1979년 12월 메이리다오(美麗島) 사건 당시 학과 후배인 陳 총통과 함께 반체제 인사들의 변호를 맡았다. 메이리다오 사건은 400여명의 지식인이 민중노선을 대표하는 같은 이름의 잡지 메이리다오를 기치로 야당 결성 등을 주창하다 검거된 사건으로 1987년 계엄령 해제 후 창당된 민주진보당(민진당)의 모태이다.
중부 자이(嘉義) 태생인 그는 국민당 집권 당시 리덩후이(李登輝) 총통이 롄잔(連戰) 부총통을 행정원장으로 겸임 발령 내자 헌법재판소에 위헌 신청을 내는 등 민주, 인권운동에 진력해왔다. 당 사무총장과 원내총무 등 요직을 거친 그는 陳 총통이 후보 출마를 공식 선언한 1999년 중반 이후에는 선거운동본부 총간사(본부장)를 맡았다. 5월20일 새정부 출범 후 총통부 비서장(비서실장격)에 임명됐으며 지난 7월 행정원 부원장에 기용됐다.
관측통들은 張 행정원장이 민진당과 야당 간의 가교 역할을 했던 唐 전 원장의 역할을 자임함으로써 정국 안정 및 금융시장 안정에 힘쓸 것으로 내다봤다. 그러나 행정 경험이 전무한 그가 민심을 수습하고 정국 및 시장 안정을 이룰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이다. 그는 당장 거대 야당 국민당이 장악한 입법원으로부터 내년도 예산안을 승인 받아야 한다.
/이동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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