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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적 고려'의 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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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을 열며] '정치적 고려'의 함정

입력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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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이론에 합리적 기대라는 것이 있다. 사람들이 영악해서 앞으로 경제상황이 어떻게 돌아갈까를 얼추 잘 알아 맞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할 수 없다. 그러나 관련 정보를 십분 활용하여 미래를 어느 정도 근사하게 예측할 수는 있다. 이를 사람들이 합리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람들이 합리적 기대를 가지고 있다고 가정하는 것이 그렇지 않은 경우보다 정책의 효과를 분석하는 데에 설명력이 더 높게 나타난다. 합리적 기대는 확실치 않은 일을 추측하는 데에도 요긴하게 활용된다.요즘 우리 경제가 난국이라고 말한다. 작년에 세계적으로 주목할 V자형의 회복세를 보였고 올해도 거시지표상으로는 양호한데 왜 난국이라 하는가. 그 큰 이유는 경제의 썩은 부위를 제대로 도려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른바 4대부문의 구조조정이 크게 미흡하기 때문이다. 학계의 합리적 기대에 따르면 구조조정이 크게 미흡한 것은 선거와 노벨평화상 같은 정치적 고려가 작용한 데에 크게 기인한다.

작년 8월에 부실덩어리 대우그룹을 더 이상 쉬쉬하면서 연명시키지 않고 공개 정리키로 한 것은 아주 잘한 결정이었다. 그러나 대우채 손실을 투자자가 5%만 부담케 한 것은 아주 잘못한 것이었다. 40조원 이상의 m 우 부실채권을 고스란히 떠안은 금융권이 이를 자체 해결할 능력이 없었다. 이를 잘 아는 정부가 작년 가을에 공적자금을 추가조성하여 금융권의 멍에를 벗겨주어야 했다. 정부는 이런 직무를 유기했다.

투자자에게 응분의 손실을 보게 하고 공적자금을 빨리 추가조성하는 것이 원안인데 이것들은 표 떨어지는 인기없는 정책이다. 총선 전까지는 여당에 불리한 구조조정을 미루고 경제가 잘 나가게 붕 띄우는 것이 좋다. 게다가 작년과 올해에 대통령이 남북관계 개선과 노벨평화상에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면서 경제를 챙기지 않았다. 이런 정치적 고려 때문에 작년 가을부터 1년간 구조조정을 위한 귀중한 시간이 허송된 것이다.

구조조정은 적어도 3~4년간 진득하게 지속해야 터널 끝이 보일까 말까 하는 법이다. 그 3~4년간은 선거가 있든 없든 경기가 좋든 나쁘든 밀어부쳐야 한다. 경제를 잘 아는 대통령이 다시 경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것은 일견 바람직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내년 초까지 구조조정을 마무리할 수 있도록 직접 챙기겠다는 것은 구조조정을 희화화시키는 위험한 발상이다. 대통령이 직접 챙긴 빅딜은 당초에 순진하게 기대했던 좋은 효과보다 재벌개혁의 걸림돌로 둔갑하고 재벌간 새로운 나누어 먹기로 귀결된 측면이 더 크지 않은가.

대통령이 경제를 챙긴다는 것은 인기없는 구조조정이 정치논리나 경기상황으로 표류하지 않고 일관성있게 추진될 수 있도록 경제팀을 감독하면서 동시에 경제팀에 힘을 실어 주는 것이어야 한다. 다시 시작한 구조조정은 현 정권 임기말까지 사심없이 밀고 나가야 어느 정도 결실을 본다.

여당이 정권재창출을 바라고 한반도에 평화정착~m 기틀을 닦기 시작한 양김씨가 노벨평화상을 바라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추진방법이 문제다. 학계의 합리적 기대에 따르면 여당이 원칙없는 대중영합적 자세로 야당과 민심잡기를 경쟁해서는 정권재창출이 불가능하다. 차라리 옛 수권시절의 전비는 아랑곳 않고 좌충우돌하는 야당과 차별화전략을 구사하면서 사심없이 개혁에 전념하는 것이 재집권의 가능성을 여는 길이다. 상을 받든 못받든 간에 노벨평화상에 연연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으면 하는 것이 국민의 바람이다.

지금까지의 정황과 경험에 의하면 집권층의 행태는 학계와 국민의 기대와는 정반대인 것 같다. 바로 이 때문에 이 정부와 우리 경제의 앞날이 순탄치 않겠다는 것이 필자의 합리적 기대이다. 경제난국의 징후가 정권 말기가 아닌 지금 온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집권층이 인식의 대전환을 이루어 합리적 기대의 주술에서 풀리기를 고대해 본다.

안 국 신

중앙대 경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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