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꿈은 셔터맨이다. 직장을 그만 두고 하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것이다. 우선 나를 키워 생활비를 벌게 하겠다며 대학원 학비를 댔다.그러나 대학원을 끝낸 뒤에도 여자인 내 월급은 남편월급의 40%에 불과하다. 남편은 결국 셔터맨의 꿈을 접었다” “남편이 며칠 전 생명보험에 들었다. 직장 동료가 암으로 사망한 뒤 남은 가족들을 보니 너무 안 됐다는 거였다.
평생 가족을 보살펴야 하는데 죽은 뒤에도 가족 걱정을 해야 하는 남편이 너무 측은하게 여겨졌다”
`남자로 태어났다는 이유만으로' 강요당하는 일이 있다면?
군대에 가야 하는 것 외에도 무조건 가족을 부양해야 하는 의무일 것이다. 여성의 경제활동이 늘어나고 가족 내 성 역할이 무너지고 있는 요즘에도 사정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달 29일부터 5일까지 천리안 유니텔 넷츠고등 3대통신망을 통해 진행하고 있는 사이버 토론회 `단지 그대가 남자라는 이유만으로-가족 부양은 남자몫?'은 남자의 가족부양 이데올로기를 점검해보기 위한 자리였다.
여성단체가 남자의 고충을 헤아리는 자리를 마련한 것은 이 논리가 가부장제를 지탱하기 때문이다.
토론에 참가한 젊은 네티즌들은 `남편은 가족부양, 아내는 가사노동'이란 이분법에 반기를 들기도 했다. “아내 월급은 내 월급의 두 배다.
내 한 달 용돈은 20만원, 아내 용돈은 40만원이다. 내가 설거지와 빨래, 아내는 요리와 청소를 맡는다. 신혼부부인 우리는 너무 재미있게 사는 데 어른들은 우리 부부를 보고 혀를 찬다” “여자가 가사노동대신 직장에서 일을 하고 싶어하는 것처럼 남자도 생활비를 버는 일 외에 다른 일을 하고 싶어한다”
토론회와 동시에 진행된 즉석투표 `당신이 원하는 부부모델' 에 따르면 `남녀 모두 취업을 하고 가사는 공평하게 분담하는 부부'가 73.3%로 가장 높은 지지를 받았다.
그러나 개인의식의 변화와는 무관하게 성 역할에 대한 사회의 고정관념은 완강한 편이다.
아내대신 육아휴직을 신청한 한 공무원의 경우. “전문직인 아내의 월급이 나보다 훨씬 많다. 아기는 부모 중 한 사람이 키워야 한다는 생각때문에 아내가 생활비를 벌고 내가 아기를 키우기로 했다. 그러나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아무튼 가장이 잘 돼야 한다는 거였다.”
토론에 참가한 여성학자 변화순(이화여대 여성학과 박사과정)씨는 “남편이 가족의 생계부양자라는 논리는 IMF때 여성우선 해고 관행을 뒷받침하는 대표적인 가부장제 논리”라고 설명한다.
또 같은 업무를 하고도 남녀 간 임금차이가 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 한국여성개발원의 조사에 따르면 1999년 동일업무에 대해 여자는 남자임금의 63.3%밖에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임금차는 결국 남성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간에 가족의 주된 생계원이 되지 않으면 안되는 순환고리를 낳게 한다.
이밖에 토론회에는 가부장제의 허구를 지적하는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남편은 생활비를 벌어온다는 이유로 집에서 늘 큰 소리를 치지만 아내는 하루종일 아이 키우고 살림하느라 녹초가 되지만 `하는 일 없이 놀고 먹는다'는 소리를 듣는다.” “가정은 누가 얼마나 기여했는가를 따지는 장소가 아니다.
서로 자신의 능력을 다해 가정을 돌보고 행복을 쌓아가는 장소다.”
김동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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