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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서방이 유고의 수호천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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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워치] 서방이 유고의 수호천사라...

입력
2000.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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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나토가 갑자기 유고슬라비아의 수호천사가 됐다. ‘인종청소’를 자행한 흉악한 독재자를 내쫓고 피폐한 경제를 회생시켜 주겠다니, 세상을 악에서 지키고 선으로 이끈다는 수호천사에 다름없다. 불과 1년반전, 걸프전이래 최대규모 폭격으로 수천명을 살상하고 1,000억 달러에 이르는 경제적 피해를 안긴뒤에도 목을 한껏 죄던 서방의 화려한 이미지 변신이다.서방 언론도 악마와 천사의 대결구도에 충실해, 건성으로 구경하는 이들은 그대로 믿을만 하다. 그러나 아무리 십자군 원정같은 명분을 떠들어도, 서구 사회 여론은 그렇게 만만치 않다. 우리 언론까지 오로지 독재자 밀로셰비치의 말로를 헤아리고 있을때, 영국 BBC 방송 인터넷 사이트의 여론마당에는 서방의 내정간섭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주류를 이뤘다.

“야당을 지지하지만, 밀로셰비치는 무고하다. 2차대전후 건설한 모든 것을 파괴하고 수천명을 살육한 서방이 갑자기 우리를 돕겠다는 것은 오만방자하다”-니콜라 이바노비치, 세르비아

“민주주의를 위한다면, 유고 스스로 지도자를 선택하도록 하라. 서방의 미디어 선전은 유고인들을 바보로 여기는 것이다”-구루 쉐노이, 미국

영국 등 나토국가들에서 쏟아진 비판여론대로, 서방의 내정간섭은 유례없이 노골적이었다. 밀로셰비치가 이기면 군사·경제 압력을 강화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야당이 집권하면 경제지원을 하겠다고 국민을 유혹했다. 아드리아해에 항모전단을 배치하고, 강제축출까지 시사했다. 언론도 그가 부정선거를 획책하다 극악하게 저항할 것이란 시나리오를 전파, 파국을 기정사실화했다.

사태는 얼핏 이런 ‘미디어 선전’대로 가는듯 하다. 승리를 선언한 야당세력은 대규모 시위와 파업 등 불복종운동을 펴고 있다. 국제적 압력속에 전통적 후원자 러시아도 등을 돌려, 밀로셰비치가 망명할 것이란 설이 무성하다.

그러나 세상을 그렇게 간단히 볼 건 아니다. 밀로셰비치의 인종청소 혐의나, 포악한 독재자 규정이 근거없다는 점은 접어두자. 민주적 전통이 없는 나라의 선거가 서방기준에서 공정하지 않을 것은 당연하지만, 서방이 수천만 달러를 들여 야당을 지원한 사실은 어차피 여·야 대결이 아님을 말해준다. 서방의 침탈로 나라와 정권의 힘이 쇠한 상황에서, 외세와 손잡은 주화파(主和派)와 주전파(主戰派)가 힘겨루기를 벌이는 형국이다.

따라서 양쪽의 정당성 주장은 모두 큰 의미가 없다. 서방은 유럽연합의 선거감시를 거부했다고 비난했지만, 나라를 초토화한 적의 선거감시를 받는다면 오히려 이상하다. 지레 비난한 부정선거도 구체적 사례는 드러난 게 별로 없다. 무엇보다 정부가 개표까지 독단했다는 선거에서, 야당 후보가 55%를 득표했다는 수치는 어디서 나왔는 지 모를 일이다. 유고에 비우호적인 독일의 권위지 디 차이트도 서방이 투표직후 야당 승리를 선언한 것을 난센스로 보았다.

힘겨루기의 향방도 예단할 게 아니다. 서방이 막대한 돈을 지원한 야당 도시에서 파업이 지속될 뿐, 수도 베오그라드를 비롯해 전국적 불복종 운동은 예상보다 저조하다. 러시아도 유고편에서 중재에 나섰을 뿐이다. 그밖에 밀로셰비치가 거액을 빼돌린 중국으로 갈 것이라거나, 버금가는 ‘악인’후세인이 조언을 위해 밀사를 보냈다는 보도 따위는 상투적 흑색선전으로 보인다.

사태를 올바로 보려면, 세르비아와 유고의 역사적 경험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서방은 유고 약화와 발칸 지배력 확대를 노린다는 객관적 분석을 바탕으로, 사태 성격과 정세를 가늠해야 한다. 서방은 이 지역에 힘의 공백이 생기고, 독일 세력이 팽창하던 90년대 중반까지 밀로셰비치를 ‘발칸 안정의 지주’로 치켜세웠다. 냉혹한 국익 게임인 국제문제를 보면서, 노상 남의 말을 좇아 민주주의 교과서를 펴드는 것은 어리석다. 재미 또한 없을 것이다.

강병태 논설위원

btk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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