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50만명의 옛 동독 도시 드레스덴은 요즘 갑자기 통일 독일의 상징이 됐다. 통일 10주년 기념행사가 이곳에서 열리고 있기 때문이다.드레스덴에서의 기념행사에는 ‘독일 통일의 영웅’이라 불려도 좋을 헬무트 콜 당시 독일 총리가 초청조차 받지 못했다. 통일 후에 터져나온 비자금 의혹으로 그는 지금 하루 아침에 실패의 나락에 빠져버린 퇴물정치인이다.
드레스덴에 못간 대신 콜은 TV에 나와 10년 전 통일 과정을 회고했다. “그땐 많은 사람들이 통일 환상에 빠졌다며 나를 바보로 취급했다”고 그는 털어놨다.
대통령이던 폰 바이츠제커조차도 ‘통일에 미친 가톨릭 교도’라고 총리인 그를 힐난했으며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과 대처 영국 총리는 숫제 독일 통일을 반대하고 나서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념식이 열린 3일 드레스덴의 경축 분위기는 통일이 환상이거나 미친 짓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의 일임을 보여주었다.
하지만 ‘통일 10년’을 맞아 슈뢰더 정부는 “이제 겨우 절반쯤 온 것같다”고 힘들게 토로한다. 지난 10년간 동독지역에 투입된 통일 비용은 우리 돈으로 700조원을 넘는다고 한다.
독일 정부가 해마다 쏟아넣는다고 하는 1,500억마르크가 서독지역 연간 총생산의 5%에 해당한다는 통계가 있다. 서독지역의 성장률은 1992년 이후로 도무지 1%대를 넘지 못했다고 한다.
너나없이 허리띠를 졸라매는 과중한 세부담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명목이 ‘연대협약’이다. 동, 서독 주민의 ‘연대’를 위해 독일 국민 전체가 참아견디는 고통의 이름이다. 어느날 갑자기 장벽이 무너지고 그 뒤 1년만에 통일이 왔었다. 그것은 더할 나위 없는 감격이고 환호였으나 그로부터 시작된 ‘통일 감당하기’의 세월은 힘들고 지리한 인고의 시간일 수 밖에 없다.
그렇게 고난의 10년을 보낸 결과를 “이제 겨우 절반쯤”이라니, 겸손한 듯 보이지만, 사실은 ‘절반’도 지나친 낙관일 지 모른다.
앞으로도 동?서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최소 5,000억마르크가 더 필요하고, 따라서 당초 2004년까지로 예정했던 ‘연대협약’의 시한도 연장이 불가피하다는 게 정설이다.
그렇다고 과연 ‘돈’만 있으면 통일을 사들일 수 있는 것인가. ‘돈’이 통일의 충분조건인가. 답은 당연히 ‘아니다’이다. 돈이 오히려 동?서 사이에 새로운 ’장벽’이 되고 있다는 이야기도 있다.
만약에 한 쪽 주민들이 “언제까지 얼마나 더 갖다 바쳐야 하느냐”고 짜증내기 시작하고, 또 한쪽 주민들은 여전히 수중에 돈없고 일자리없음을 불평하거나 실업수당 받는 데 안주하는 생활방식을 버리지 못한다면, 그것이 바로 제2, 제3의 ‘장벽’이 된다.
독일의 통일과정에서는 성급하거나 미처 대처하지 못해서 저지른 ‘3대 실수’가 있었다고 지적된다. 통일 직후 시행한 동?서독 화폐의 등가교환, 동독지역 임금의 급격한 상승, 옛 동구 공산권에서의 수출시장 상실 등이 그것이다.
독일의 경험은 남북화해의 첫 발을 옮기고 있는 우리에게는 살아있는 교훈이다.
김대중 대통령은 기회있을 때마다 “통일은 20~30년 후에나 기대할 수 있다”고 말해 왔다. 그 말 그대로, 통일은 성급하게 서두를 일이 아니라는 인식이 우리 사회에 더 보편화해야 한다.
독일이 밟아간 길을 살펴서 판단할 수 있는 여유가 우리의 이점이다. 언젠가의 통일을 준비하는 제1보는 국민이 준법정신을 기르는 일이고, 민주시민으로 좀 더 성숙해지는 것이다.
독일 통일 10년의 현장에서 가장 실감나는 교훈이 하나 남았다. 부패라는 이름의, 정치인의 독배에 관한 것이다.
정치인은 그 공헌과 업적이 아무리 위대해도 부패의 유혹에 단 한번 걸려든 순간 처참하게 죽는다. 드레스덴에 오지 못한 콜이 그것을 보여 줬다. 그는 ‘위대한 바보’였는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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