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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119의 明과 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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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119의 明과 暗

입력
2000.10.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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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게 안에 비둘기가 날아 들어 왔다. 쫓아 내려고 몇번 손짓을 해보았으나 비둘기는 꼼짝도 하지 않는다. 무섭기도 하고 마음에 쓰여 일이 손에 잡히지 않아 고심하던 주인 아주머니는 궁리 끝에 119로 전화를 걸었다. 금세 도착한 119 구조대원이 두어 번 팔을 휘젓자 비둘기는 날아갔다. 비둘기를 쫓아 달라는 신고를 받고도 부리나케 출동한 행동이 말해주듯, 그들은 국민이 부르면 어디든 기꺼이 달려간다. 국민의 부름을 받는 것이 즐겁다는 표정들이다.■119 구조대와 119 구급대가 우리나라 공무원 사회에서 가장 모범적인 조직으로 국민의 사랑을 받는 것은, 그들이 오로지 국민만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더욱 신뢰를 받는 이유의 한가지는 몸을 던져 남을 도와 주고도 대가를 받지 않는 청렴성이다. 명재경각(命在頃刻)의 위기에서 목숨을 건진 사람들이 생명의 은인이라고 내미는 조그만 ‘성의’조차 그들은 받지 않는다. 국민이 자신들의 월급을 주기 때문에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것이다.

■이런 청렴성에 대해 그들은 “대가를 받지 않는 것이 전통일 뿐”이라고 말한다. 1988년 구조대 창설 당시 몇몇 대원이 “특수부대 출신의 명예를 지키자. 새로운 전통을 세우자”는 약속을 했고, 그것을 지키다 보니 전통이 되었다는 것이다. 구성원 대다수가 특전사나 해군 UDT 출신인 그들은 충성심이 몸에 밴 사람들이다. 민간인이 되어서는 그것이 국민에 대한 충성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자율이 생명인 그들에게 전통은 무엇보다 값진 재산이다.

■이런 명예로운 조직을 관장하는 상급조직이 거꾸로 가고 있다는 소식은 충격이었다. 성수대교와 삼풍아파트 붕괴사고를 계기로 서울시가 추진중인 119 전산정보 시스템 사업의 예산 수십억원이 증발했다. 상황실에서 119 신고자의 위치를 즉각 확인할 수 있는 기능 등을 보강하는 사업을 한다면서 한물 간 컴퓨터를 사들이고, 유령 인건비로 거액을 빼돌렸다. 자체 감사기구는 이를 적발하고도 덮어 두었다. 목숨을 걸고 출동하는 119 대원들을 대할 책임자들의 낯빛은 어떨까.

문창재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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