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작년 7월 유엔 사무총장으로부터 동티모르 주민투표를 관장하는 세 명의 유엔선거관리위원 중 하나로 임명장을 받고 동티모르로 향했다. 400년간 포르투갈 식민지 하에 있던 동티모르는 1975년 독립하기가 바쁘게 인도네시아의 무력침략을 받아 인도네시아의 27번째 주로 합병된 상태였다.주민들은 독립을 요구하며 24년간 투쟁했고 그 과정에서 주민의 4분의 1이 희생되는 값비싼 대가를 지불했다. 세계 인권단체의 끈질긴 요구가 받아들여져 유엔은 포르투갈 정부와 인도네시아의 동의를 얻어 99년8월30일 동티모르 독립에 대한 주민투표를 실시하기로 했다.
난생 처음인 동티모르는 매일 말라리아약까지 복용해야 할 만큼 생활환경이 열악한데다 독립을 반대하며 인도네시아의 자치령으로 남기를 바라는 민병대의 난동으로 치안이 지극히 불안한 형편이었다. 유엔 직원들조차 신변 위협이 없지 않았지만 투표 준비는 차질없이 진행됐다. 민병대의 위협도 갈수록 심해져 희생되는 주민의 수도 늘어갔고 아예 마을을 비우고 산속으로 잠적하는 주민들도 늘어갔다.
두달 여에 걸친 우여곡절의 준비기간이 끝나고 드디어 투표 날이 왔다. 민병대의 위협으로 투표를 못하는 주민들이 많을까 걱정했던 우리는 새벽6시부터 주민들로 꽉 찬 투표장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들은 생명의 위협을 무릅쓰고 무리를 지어 새벽부터 투표소에 도착, 긴 줄을 서 있었다.
뜨거운 햇볕 속에 순서를 기다리는 주민들이 안쓰러울 지경이었으나 그들은 24년도 기다렸는데 하루를 못 기다리겠냐며 오히려 우리를 안심시켰다. 독립을 향한 주민들의 용기와 열정이 98.6%라는 경이적인 투표기록을 세웠다.
개표작업은 나흘간 밤낮으로 진행됐다. 9월4일 새벽 최종 집계된 투표 결과가 가장 먼저 우리들에게 전달됐다. 가슴죄며 기다리던 결과는 78.5%대 21.5%로 압도적인 다수가 독립파를 지지하고 있었다. 새벽 6시께였다. 마침 아침 해가 막 떠오르고 있었다.
고통과 수탈과 가난의 역사를 접고 자유와 희망과 번영의 동티모르를 약속하는 새 아침이 밝아오고 있었다. 나는 이번 투표가 동티모르 주민의 의사를 제대로 반영한 공정하고 자유롭고 민주적인 투표라고 본다는 세 명 선관위원이 유엔사무총장에게 보내는 공식서한에 엄숙한 마음으로 서명했다. 내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손봉숙 한국여성정치연구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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