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루살렘 성지에서 발생한 대규모 유혈 충돌로 팔레스타인 내부에서 강경파와 온건파의 대립이 빚어지는 등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의 정치적 입지가 급속히 약화하고 있다. 이슬람 저항운동단체인 하마스는 1일 "아라파트가 민중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있다"면서 퇴진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하마스는 특히 이번 사건을 1987~93년과 1996, 98년 요르단강 서안과 가자지구에서 일어난 대규모 봉기와 같은 성격의 '인티파다(Intifada)'로 규정하고 대(對) 이스라엘 지하드(성전 聖戰)를 촉구했다. 이브라힘 고셰 하마스 대변인은 "우리는 지금 4번째 인티파다를 맞고 있다"면서 "아라파트가 이번 봉기마저 망치도록 방기해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아라파트는 1993년 오슬로 협정으로 1차 인티파다를 와해시키는 등 그 동안 협상을 통해 팔레스타인내 강경파의 득세를 적절히 차단해왔다.
주목되는 것은 하마스의 공세가 팔레스타인 내부 뿐 아니라 아랍세계 전역에서 설득력을 얻고 있는 반면, 아라파트의 정치적 운신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이번 사건은 아랍의 성지인 예루살렘에서 일어난 데다 이스라엘 군부와 정면 충돌, 민족적 감정까지 자극했다. 예루살렘이라는 기름에 폭탄이 터진 것과 같은 형국이다.
사실 아라파트는 그 동안 이스라엘과 동예루살렘 문제를 협상하면서 겉으로는 '범아랍권 공조'를 표방했지만 이스라엘과 거래할 수도 있는 인물이라는 인상을 주었다. 하마스가 이날 아라파트를 에후드 바라크 이스라엘 총리와 동종으로 취급하면서 '외로운 독재자'라고 비난한 것도 이 같은 의혹에서 비롯됐다. 호스니 무바라크 이집트 대통령과 압둘라 사우디 아라비아 왕세자, 모하마드 하타미 이란 대통령 등 아랍권 지도자들도 여러 차례 '성지 포기 결사반대' 의지를 보이며 아라파트의 각성을 촉구한 바 있다.
여기에다 아라파트는 내부적으로 부패와 테러 의혹을 받으면서 거센 정치적 도전을 받아왔다. 지난해 말에는 팔레스타인 내 저명인사 수십 명이 아라파트가 주도한 정치테러에 대해 항의, 정권 반대 연판장을 돌리기도 했다.
때문에 하마스의 도전은 일차적으로 팔레스타인 내부의 권력 투쟁의 성격을 띠고 있다. 1987년 인티파다를 계기로 결성된 하마스는 한때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대신할 이슬람단체로 두각을 보였으나 아라파트와 서구의 정치 공세로 '테러집단'이라는 오명을 쓰기 일쑤였다.
하마스는 이번 사건을 계기로 아라파트가 추구해온 평화협상의 명분을 와해시켜 자신들을 이슬람교의 진정한 수호자로 부각시킨다는 계산이다. 반면 아라파트는 이스라엘과 협상에 나서기 앞서 내부의 적을 아우를 명분을 찾아야 하는 곤경에 처했다. 아라파트가 협상의 명분을 찾지 못하고 무너지면 중동평화는 영원히 미궁으로 빠지게 된다.
/이동준기자 dj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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