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의 영화 교류에 관한 발언을 요구받는 자리에서 나의 결론은 언제나 “자료실을 열자” 로 끝맺곤 했다.북한의 '영화 문헌고' 와 한국의 '영상 자료원'에 있는 자료들을 서로 교류함으로써 일단 이해의 폭을 넓히자는 것이다. 왜냐하면 적어도 남북의 영화 교류에 관한 한 이것을 상업적 목적을 가진 업자들에게 맡겨서는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북한 영화의 특수성을 이해하려는 맥락이 배제된 채 상업적 홍보만 믿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오히려 북한영화에 대해 아예 흥미를 잃거나 심지어 경멸하는 사태까지 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남한에 공개된 ‘임꺽정’ ‘돌아오지 않은 밀사’ ‘불가사리’ 등에 대한 남한 관객의 반응은 이미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
그것은 문화의 우열을 가리려는 왜곡된 관습에도 일부 기인하지만, 워낙에 영화라는 매체가 가진 '친숙성' 과 '익숙한 흥분' 에 기인하는 것이다.
남한과 북한의 영화는 실제로 너무 다르다. 통일적 관점에서 두 영화의 접점을 찾는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며 오히려 상호 이해를 전제로 하되 차별성을 드러내는 것으로부터 출발점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예를 들어서 스태프와 배우들의 이름이 적힌 자막이 북한 영화에 나타난 것은 1980년대부터이며, 사회적 소재를 다루는 남한 영화에는 불필요한 섹스 장면이 나온다.
이러한 사소한 질문 즉 '영화관(觀)' 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질문으로부터 우리는 시작할 필요가 있다.
해방 직후 남북 최고의 영화는 각각 ‘자유만세’ (최인규ㆍ1946), ‘내 고향’ (강홍식ㆍ1949)으로서 모두 항일투쟁을 다루고 있다.
하지만 전자가 신파 멜로의 틀로써 이루어진 반면 후자는 철저하게 '투쟁 그 자체' 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게다가 최인규 감독은 일제 말기 친일 영화인의 대표 주자였다. 왜? 우리는 이런 질문을 거쳐야 한다.
그러한 의식적인 노력이 없는 가운데 이루어지는 남북 영화교류는 무의미할뿐 아니라 서로에게 혐오감만 줄지도 모른다.
남북화해에 알찬 기여를 했다고 평가받은 ‘공동경비구역 JSA’ 조차 예외가 아니다.
이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 중 한명인 북한 출신 작가는 어느 인터뷰에서 만약 이 영화를 북한 사람들이 본다면 아마도 '뭐 저런 시답잖은 영화를 만들었을까' 라는 반응을 보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 사회가 지향하는 체제의 영향으로부터 벗어날 수 없는 대중 예술로서의 영화, 그 자체의 상호 교류만으로 진정한 교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나 평면적이다.
게다가 서로가 직, 간접적으로 내비치는 자기 체제에 대한 옹호, 이것들이 과연 어떻게 미소 속에서 만날 수 있을까?
그래서 나는 당분간 '영화의 통일'은 꿈도 꾸지 않기로 했다. 물론 둘 사이에 공통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70년대 이전 남한 영화의 대사 억양과 북한의 그것은 비슷하다. 또 신파적인 영화 양식은 양쪽 모두에게 짙게 드리워져 있는 그늘이다.
하지만 그보다는 차이가 더 많다. 그래서 우선 '자료실을 열고' 이것을 연구자들에게 넘겨서 상호 토론의 과정을 거친 후 대중적 이해를 보장하는 환경에서 공개하기를 주장하는 것이다.
이것은 결코 엘리트주의적인 발상이 아니다. 상업적 또는 체제간의 거래에 의해 이것이 이루어진다면 곧바로 훼손되거나 절교할지도 모를 '문화 파괴' 의 위험을 예방하는 차선책일 뿐이다.
/이효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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