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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정위의 봉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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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의 눈] 공정위의 봉변

입력
2000.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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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대상 기업의 핵심 임원을 부르면 몸이 아프다며 입원해 버리고, 실무자는 조사중에 휴가를 가버리더군요. 그 뿐입니까. 재무제표와 경리장부 등 단순자료를 요청해도 늑장부리기가 일쑤이고 어떤 임원은 조사받으러 왔다가 진술서 원본을 훼손하기도 했습니다. "기업체들의 담합이나 우월적 지위남용 등 불공정거래 여부를 조사하는 공정거래위원회가 최근 정유사 담합입찰 조사를 하며 실제로 겪은 일이다. 공정위 고위관계자는 "피조사자의 자백이 없었다면 치밀한 사전 담합 고리를 밝혀내지 못했을 것"이라며 "심증적인 확신에도 불구하고 협조를 못받으면 눈을 뜬 채 기업들에게 농락당하기 일쑤"라고 말했다. 최근에는4대그룹 부당내부거래 조사과정에 조사관들이 모 업체 직원들로부터 드잡이까지 당하기도 했다.

수사권이 없는 공정위로서는 조사를 강제할 수단이 없다. 관련기업으로서는 이 같은 '약점'을 간파, 협조를 기피한다. 문제가 되더라도 얼마간의 과징금만 물면 그만이다. 공정위가 공정성 시비까지 감내하며 조사에 협조한 정유사에 150억원의 과징금을 깎아주고 나머지 업체에 가중부과한 것도 이 같은 현실을 반영한 것이리라.

조사 감독기관의 권한강화가 꼭 옳은 일은 아니다. 업계가 공정위의 금융계좌 추적권 연장을 반대하는 것도 일리가 있다. 하지만 갈수록 교묘해지는 당국과 기업의 머리싸움에 최소한 수단적 균형은 유지돼야 하지 않을까.

최윤필기자 walde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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