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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10주년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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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 10주년 '어제와 오늘'

입력
2000.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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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이 3일 통일 10주년을 맞는다. 2차 대전 이후 분단된 동독과 서독은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 화폐통합을 거쳐 1990년 10월 3일 마침내 하나의 국가로 재탄생했다.서로 다른 체제속에 동서로 나눠져 살아왔던 게르만 민족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통일 후유증을 극복하고 '베를린 공화국'으로 새로운 출발을 시작했다. 통일 10년의 어제와 오늘, 유럽의 맹주로 거듭나고 있는 '새 독일'의 면모를 살펴본다.

/ 편집자주

독일 통일은 흡수통일이었다. 독일통일의 이러한 특성으로 인해 10주년을 맞은 지금까지도 흡수통일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고 있다. 우선 긍정론이 대세이긴 하다. 45년이라는 분단기간에 비해 10년이란 짧은 시간동안 독일은 서로의 이질감을 극복하고 게르만 민족의 단합된 힘을 보여주었다는 평가이다.

반면 아직도 동서독의 진정한 통합은 멀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해 9월 1일 독일 연방정부와 하원(분데스타크)에 이어 지난달 29일 상원(분데스라트)이 서독의 수도였던 본에서 베를린으로 이전함에 따라 일단 가시적이며 공식적인 동서독의 통일 작업은 마무리됐다고 말할 수 있다.

3일 베를린의 중심인 브란덴부르크문에서 대대적인 통일 10주년 행사를 독일 정부가 개최하는 것도 독일이 나치독일이라는 역사의 굴레를 벗고 동서독의 이념과 체제마저 극복, 정상적인 통일국가인 '베를린 공화국'의 출범을 상징하고 있다.

■ 통일은 과거 완료형인가

독일 정부는 지난 10년 동안 정책적으로나 물질적으로 옛 동독 지역에 대한 개발과 투자에 주력해 왔다. 옛 동독에 쏟아부은 돈은 무려 12조 마르크(5,400억달러). 이 결과 현재 동서독 지역간 경제 격차는 통일 당시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줄어 들었다.

제도적으로도 옛 동독 지역만을 대상으로 한 특별 경과조치를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을 만큼 통합이 이뤄졌다.

그러나 경제 전문가들은 아직 동독 지역에서 시장 경제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고 있으며 과도기의 상황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독일의 Ifo 경제연구소는 최근 통일 10주년을 맞아 발표한 보고서에서 독일 정부가 옛 동독의 국유재산을 지나친 헐값에 처분함에 따라 동독 지역의 산업기반이 붕괴됐으며 동독 지역의 임금 인상 요구가 투자와 생산성을 초과했기 때문에 동독 지역의 산업 생산력이 서독 수준에 못 미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독 지역의 낮은 생산성과 높은 실업률로 인해 독일 정부는 동독 지역 개발을 위해 막대한 보조금을 투입할 수 밖에 없었으며 현재 연간 1,400억 마르크(서독지역 국내총생산의 약 5%에 해당)의 자금이 서독지역에서 동독 지역으로 이전되고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독일 정부는 1995년 '연대협정'에 따라 지원하고 있는 동독 재건자금이 종료시한인 오는 2004년 이후에도 계속 필요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동서독 지역간 사회간접자본시설의 격차를 해소하는 데만도 3,000억 마르크의 추가비용이 들어갈 것이며 전체적으로 약 5,000억 마르크가 더 필요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동독지역에 기반을 두고 있는 대기업은 극소수에 불과하고 동독 지역의 실업률은 서독 지역의 2배인 20%에 육박하고 있다. 동독 지역의 소득수준은 서독지역의 85%에 달하고 있으나 생산성은 56%에 불과해 산업기반이 아직도 취약하다.

그러나 이같은 경제적 격차에도 불구하고 동독 지역에 대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동독의 사회간접자본 시설이 확충되고 첨단산업 단지가 개발되는 등 동독 지역의 산업 기반이 탄탄해진 것도 사실이다.

독일 정부가 통독 10주년을 맞아 내놓은 동독경제에 관한 보고서는 통일이 동독 경제구조 변혁을 위한 돌파구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고 밝혔다.

이 보고서는 통일을 계기로 동독 경제구조가 제조업 중심으로 재편되는 과정에 있으며 이같은 구조적 변화를 통해 성장률과 고용에도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고 밝혔다.

동서독간의 사회적 통일도 아직 문제이다. 자유와 통일이 모든 것을 가져다 줄 것으로 생각했던 동독 지역 주민들의 실망과 심리적 공허감은 사회, 정치적으로 여러 가지 후유증을 나타내고 있다.

동독 지역의 젊은 세대 중 일부가 심리적 좌절감 때문에 외국인들 공격하는 등 폭력을 사용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극우 나치세력이 동독지역에서 기승을 부리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 비롯된다.

물론 통일 이후 계속되고 있는 경제적 격차와 동독 지역의 높은 실업률, 사회적 이질감, 심리적 장벽 등은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임에 틀림없다. 통일 후유증은 장기적으로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해야만 할 문제가 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동서독은 게르만의 전통과 문화, 경제력 등으로 이미 통일 후유증으로 야기된 상당한 문제를 해결했다. 때문에 게르만 민족에 있어서 통일은 이제 '과거 완료형'이 된 셈이다.

■ 모든 길은 베를린으로

독일의 수도인 베를린은 유럽의 한복판에 있으며 모든 길은 베를린으로 통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독일은 유럽연합(EU)의 경제통합을 주도한데 이어 EU의 정치통합에도 앞장서고 있다. EU가 확장되면 독일은 지리적으로 유럽연합의 중심에 자리잡게 된다.

독일은 이미 중부 및 동유럽에 정치, 경제적으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독일은 통합된 유럽 내에서 맹주의 역할을 하고 있다. 독일이 이처럼 유럽의 맹주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주요한 이유는 바로 경제력에 있다. 독일 경제의 원동력은 수출이다.

독일 통계청은 올 수출액이 사상 처음 1조 마르크를 돌파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올 상반기 수출액은 5,600억 마르크로 지난해 동기보다 무려 18.9%가 늘었으며 동독지역에서의 수출 증가율은 32% 를 기록했고 무역수지 흑자는 109억 마르크이다. 독일 수출의 60%는 EU에 집중돼 있다.

이는 한마디로 독일이 유럽 전체에 대한 경제적 주도권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처럼 수출이 증가함에 따라 올 상반기 경제성장율도 3.3%를 기록하고 있는데, 이는 통일이후 최고치다. 독일은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EU내에서도 정치적 이니셔티브를 쥐게 됐다.

2002년부터 유로화가 유럽의 공식 단일화폐가 되면 마르크화를 보유했던 독일의 위상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독일은 과거부터 라이벌 관계였던 프랑스를 뛰어 넘어 나치독일의 아돌프 히틀러가 무력으로 차지했던 유럽보다 넓은 지역을 정치, 경제적으로 차지할 수도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때문에 유럽인들 중 일부는 독일의 영향력 확대에 대해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독일도 이를 의식해 '하나의 유럽'을 강조하며 연대의식을 강화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게르만 민족은 철혈재상으로 유명한 비스마르크 재임 시절인 제2제국의 영화를 다시 꿈꾸고 있는 듯 하다.

이장훈기자 truth21@hk.co.kr

■한반도에 주는 교훈

독일이 지난 10년 동안 동서독의 화합과 통합을 이루어 온 과정은 통일 시대를 준비하는 한반도에 어떤 교훈을 줄 것인가. 특히 사상 처음으로 남북한 정상회담이 개최되고 남북간의 교류가 급진전함에 따라 독일의 통일 과정과 통일 이후의 통합 노력이 우리의 관심이다.

동서독의 통일은 무엇보다 '흡수통일'라는 점에서 많은 문제점이 나올 수 밖에 없었다. 첫째는 너무나 과다한 통일 비용이 들었다는 것이다. 독일 연방정부는 옛 동독지역을 서독의 수준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퍼부었으며 앞으로도 상당기간 투자를 계속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번 째는 동독에 대한 연구를 제대로 못해 정책적 오류가 잦았다는 것이다. 옛 동독의 실상은 물론 동독 경제력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고 체제 전환이 쉽게 될 것이라고 오판했다.

이 때문에 동독지역의 대량실업과 기업도산이 이어졌다. 또 서독 경제가 통일을 감당할 만한 능력이 있다고 자만한 것도 잘못이었다.

통일 이후의 문제로는 우선 성급한 화폐통합을 했다는 것이다. 서독과 동독 화폐의 1대 1 교환으로 동독인들은 치솟는 임금과 물가, 높은 실업률 등으로 삼중고를 겪어야만 했다. 다음으로 45년간의 분단상황에 따른 이질적 체제에 익숙해 했던 동독인들에게 서독의 체제를 무작정 도입했다는 것이다.

시장경제의 원리조차 파악 못한 많은 동독인들은 이 때문에 심리적인 불안이 가중되고 사회적 위화감이 조성됐다. 행정과 사법제도의 차이점을 고려하지 않고 서독의 법과 조직체계를 그대로 도입해 혼란을 더욱 부채질했다는 지적도 있다.

하지만 이같은 부작용에도 불구, 동서독이 빠르게 동일체제화될 수 있었던 것은 서독 정부의 통일 준비가 철저했기 때문이었다. 동서독이 통일에 따른 충격을 흡수할 수 있었던 것은 분단 상태에서도 꾸준히 인적, 물적 교류가 이뤄져 왔기 때문이다.

동서독 정부는 협상을 통해 주민 간에 자유로운 왕래를 비롯해 거주이전 까지도 보장했다. 또 동서독간의 경제적 교류는 국가간 교역이 아닌 내독(內獨)교역으로 규정하고 관세를 부과하지 않았다. 내독 교역의 규모는 1950년대 초기 8억 마르크에서 1988년도에는 160억 마르크로 20배나 증가했다.

통일 후 10년이 지난 현재 동서독간의 정치적, 제도적 통합은 사실상 마무리됐다. 독일 통일과 통일후의 통합 과정을 볼 때 한반도의 통일은 남북한간에 진정한 의지만 있다면 불가능하지는 않다는 점을 시사하기에 충분하다.

이장훈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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