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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올림픽에서 무엇을 얻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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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 칼럼] 올림픽에서 무엇을 얻었나

입력
2000.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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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화가 꺼졌다. 잔치는 끝났다. 시드니 올림픽의 폐막을 지켜 보면서 이 대회를 통해 무엇을 얻었는가를 생각한다. 1988년에 올림픽을 개최한 경험이 있는 우리로서는 호주와 한국의 올림픽이 어떻게 다른지, 12년 전과 지금의 올림픽이 각각 어떤 의미를 갖는지 비교하게 된다.12년 전 이맘때 한국인들은 서울올림픽의 성공을 자랑스러워하며 들떠 있었다. 그러나 폐회식이 끝나자마자 섣달 그믐날까지 정쟁과 청문회로 날을 새웠고, 올림픽을 통해 이룩한 사회적 통합은 이내 실종됐다. 올림픽이라는 가설무대에서 세계를 상대로 한바탕 가식(假飾)의 무도회를 연 꼴이었다. 서울올림픽의 주제어는 ‘벽을 넘어서’였지만 벽을 넘기는커녕 그 이후 더 많은 벽을 쌓은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올림픽은 그 시대 문화·사회의 비의(秘義)가 담긴 각종 기호(記號)의 집합적 발현장이다. 이번에도 세월 앞에 영원한 강자는 없다는 메시지가 확인됐다. 세계신기록 35번 수립에 빛나는 인간새 부브카의 추락, 레슬링대제(大帝) 카데린의 몰락같은 ‘신화의 종말’은 아쉽고 안타깝지만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그리고 수많은 인간승리가 이번에도 세계인을 감동시켰다.

프로와 아마의 경계는 거의 없어지고 올림픽은 스포츠 마케팅의 각축장이 됐다. 거대한 상업화의 물결은 스포츠의 상품화에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사격스타 강초현, 양궁스타 윤미진의 등장은 많은 팬클럽을 탄생시켰다. 광고모델로 세우려는 경쟁도 벌어지고 있다. 이런 시대이기에 쿠바의 금메달복서 사본처럼 프로전향을 거부하는 아마추어가 더욱 사랑을 받는 것이다.

하지만 프로든 아마든 스포츠스타는 이제 권력이다. 그들은 정치권력 문화권력 못잖은 권력을 갖고 있다. 국가·정치권력이 모든 것을 지배하고 통제하던 ‘카 퍼레이드의 시대’는 가고 권력의 분절(分節)과 다핵화가 진행되고 있다. 개인과 개성의 시대가 된 것이다. 올림픽을 통해 우리가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바로 개인화 다양화시대가 열렸다는 메시지이다. 유도 복싱 레슬링의 퇴조에서 알 수 있듯 헝그리 스포츠시대는 갔다. 하키나 펜싱 사격에서 거둔 기대 이상의 성공은 스포츠의 개성시대-하고 싶은 운동을 함으로써 욕구를 충족시키고 성공도 거두는 시대가 됐음을 보여준다.

올림픽경기를 참관한 사람이면 느낀 일이겠지만, 펄럭이는 태극기를 보면 눈물겹고 함께 부르는 애국가에는 목이 멘다. 올림픽처럼 국가를 의식하게 하고 애국심을 고양시키는 행사도 없을 것이다. 국가와 개인의 접점과 그 관계를 생각하게 해주는 의식(儀式)이 올림픽이다. 그러나 시드니에서는 ‘올림픽 때문에 시끄럽고 개인생활에 방해가 된다’고 외국으로 나가버린 시민들이 지난 해보다 더 많았다고 한다. 폐회식도 행사진행 방해꾼이 장내외를 휘젓고 다니는 기발한 방식으로 시작됐다. 서울올림픽의 폐회식이 장엄하고 무대적 의식적(儀式的)이었다면 시드니올림픽의 폐회식은 일상의 생활이 담긴 자유분방한 연희(演戱)의 성격이 강했다.

우리도 자유와 개성을 중시하는 시대로 이행하고 있다. 올림픽기간에 해외로 나가는 사람들을 조국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될 것이다. 국민 개개인의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위해 국가는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생각해야 할 시점이다. 메달리스트들에게 연금을 주고 환영행사를 여는 것도 의미있지만, 스포츠의 사회적 영향력을 감안한 총체적 정책이 필요하다. 더 이상 정부의 조작과 조직을 통해 국가가 발전하는 세상이 아니다. 만들어지는 체력과 애국심에서가 아니라 자발적인 애국심에 의해 국가는 발전한다. 개인의 욕구와 적성 실현이 사회발전으로 연결되도록 기회를 주고 돕는 것이 국가의 할 일이다. 스포츠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12년 전에 우리는 한국을 세계에 부각시키려고 그토록 애썼지만 이제는 세계시민으로서의 한국인 육성에 주력해야 한다.

시드니 올림픽에서 한국이 따낸 메달은 당초 기대에 못 미치는 수준이지만 처음부터 메달에 목매달 일은 아니었다. 한국선수단은 잘 싸웠다.

/편집국 국차장 yc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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