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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아리] '콜라 보다 값싼 석유'

입력
2000.10.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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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중반 알래스카 푸르도베이와 텍사스 휴스턴에 취재를 간 적이 있다. 푸르도베이는 중동전쟁으로 '오일쇼크'를 겪으면서 미국이 개발한 대규모 유전 지대이고, 휴스턴은 메이저 회사를 비롯한 석유자본과 기술이 집결해 있는 '석유 수도'이다.그런데 당시 이 두 지역에서는 석유위기(Oil Crisis)라는 주먹만한 글자가 신문을 채우고 있었다. 국제 석유값은 하향(下向)안정세로 전 세계가 석유에 관한 한 평온하여 뉴스의 대상이 아니었기에 이런 호들갑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석유값 하락으로 알래스카와 휴스턴의 경제가 엉망이 되고 있다는 사정을 알고 나니 그곳 사람들에게 석유위기라는 말은 진실임을 알게 되었다.

석유값이 배럴당 30달러를 웃도는 요즘 이 두 곳의 신문들은 어떤 제목을 달고 있는지 궁금해지지만, 그 곳 사람들은 분명히 호황으로 즐거워하고 있을 것이다. 이런 역전(逆轉)현상은 바로 석유수출국에도 똑같을 것이다. 인도네시아 베네수엘라를 비롯하여 중동산유국 등 석유수출국기구(OPEC) 회원국은 말할 것도 없고 경제위기를 맞고 있는 러시아와 주변 산유국들 모두가 바라던 일들이 아닌가. 우리가 반도체값이 올라가는 것을 좋아하는 것과 다를 것이 없다.

'그들의 석유위기'는 사라졌고, 대신 '우리의 석유위기'가 온 것이다.

과거 석유값 폭등의 원인은 중동전쟁이었다. 중동에 전운도 없고 미국이 유일 초강대국으로 군림하는 팍스아메리카나 시대에 닥쳐온 고유가 현상과 석유수출국들의 자각과 단결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9월 27일과 28일 베네수엘라의 카라카스에서 열린 OPEC 정상회담은 석유가 안정을 위한 모양새를 갖췄지만 산유국의 단결 움직임을 확연히 보여준 이벤트였다. 이곳에서 불구대천의 원수지간인 이라크와 이란이 회해의 악수를 나눴다..

석유값을 안정시키지 않으면 세계경제가 어려워진다는 서방국들의 요구에 멕시코 호세 앙겔 게리아 재무장관은 "석유값이 8달러로 내려갔을 때 세계는 우리를 본척만척했다"고 응수했고, 베네수엘라의 차베스대통령은 OPEC개막연설에서 "석유가 코카콜라보다 싸다"고 미국을 비꼬았다. 대통령선거 탓도 있겠지만 산유국을 통제하는데 미국의 힘이 옛날처럼 효과적이지 못하다.

이제 우리나라가 진짜 고민할 차례이다. 올해 필요한 석유는 9억배럴이고 여기에 250억달러가 들어간다고 한다. 쿠웨이트의 연간 산유량을 몽땅 쓰고도 2억배럴이 모자란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석유를 쓰고 있는 지를 가늠할 수 있다. 국민들도 "전기값 싼데…" "물값 싼데…"라며 절약할 줄 몰랐지만, 정부의 에너지정책에서 미래를 준비한 흔적은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도 보이지 않는다.

산자부 과장님의 서랍 속에서 꺼냈다가 기름값 내리면 슬그머니 사라지는 것이 정부의 에너지 정책이었다는 비판이 넘친다. 산업, 환경, 국민의 소비행태를 하나로 묶어 에너지효율적 체계로 만드는 패러다임의 변화가 필요한 때이다. 유럽은 석유소비가 제자리 걸음이고 일본 또한 30년동안 준비한 덕택에 이번 고유가에 쇼크가 없다. '우리의 위기'라지만 같은 우리가 아니다.

김수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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