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경제회생이 통일 밑거름대북 식량차관이 발표되었다. 태국산 쌀 30만톤과 중국산 옥수수 20만톤을 10년 거치 20년 상환의 조건으로 제공한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미 여러 가지 비판이 나오고 있다. 우선 규모가 크다는 것이다. 1995년 대북 쌀지원 규모가 15만톤이었는데 50만톤은 너무 많다고 한다. 그러나 규모는 물량이 아니라 금액으로 평가해야 한다. 1995년에는 소요금액이 2억3,000만 달러를 넘어섰으나 이번에는 1억 달러 수준이다..
외국에서 사서까지 줄 필요가 있느냐라고 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이 저렴한 방법이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 국산 쌀은 국제가격에 비해 5배정도 높은 수준이다. 식량차관의 목적은 북한 식량난의 해소를 돕기 위한 것이므로 굳이 비싼 국산 쌀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효과를 꾀하여야 한다. 사실 이번 차관은 북한이 국제시장에서 식량구입을 할 것을 조건으로 1억불의 현금차관을 제공하는 것과 동일한 것이지만, 제공된 현금의 전용 가능성을 고려하면 현물차관이 낫다.
더 진보적인 진영에서는 무상지원으로 해야 한다는 주장을 펴기도 하다. 그러나 언제까지 인도적 차원에서 지원을 지속할 수는 없다. 북한의 식량난이 만성화하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상환조건을 크게 완화하는 형태로라도 차관의 형식이 나은 방법이다. 이는 남북한간 최초의 차관이라는 점에서도 향후 남북경제관계 발전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다.
이번의 식량차관은 제공방식도 과거에 비해 진일보했다. 무엇보다도 분배의 투명성을 높였다. 이전에는 군사미로의 전용에 대한 우려가 있었으나, 이번에는 우리측 대표 혹은 국제기구 대표가 현장확인을 한다는 점에 구두합의가 이루어졌다.
또한 이번 차관은 북한이 식량문제의 심각성을 밝히면서 공식적으로 지원을 요청한데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이는 북한이 남한 당국과의 경제협력에 대한 필요성을 스스로 공식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물론 문제점들도 적지 않다. 첫째, 정부가 처음부터 공개리에 국민적 합의과정을 밟지 않았다는 것이다. 둘째, 재원으로 남북협력기금을 사용하는 문제이다. 기금은 성격상 정부의 자의성이 크게 개입되므로 정치적 목적의 이용이라는 오해를 낳기에 충분하다.
이산가족 상봉과 같은 인도적 행사에 대한 무상지원이 아니라면 일반예산으로 편성하고 국회의 동의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셋째, 북한 식량난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논의는 미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량차관은 형식이나 내용으로 볼 때 긍정적으로 평가되어야 한다. 더욱이 작년 다소 호전되었던 북한의 농업생산은 올해 다시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1~7월간 강수량은 예년의 52%에 불과하고, 5~7월은 고온과 가뭄, 8월에는 집중호우와 태풍으로 인한 피해가 매우 컸기 때문이다. 장기화되는 식량난으로 인한 영양결핍 문제도 심각하다. 예컨대 지난 7월 UNICEF의 자료에 의하면 북한 5세 미만 어린이의 52%가 발육장애자로서 이는 이디오피아 다음으로 높은 것이다.
북한 식량난을 방치할 수는 없다. 설사 그럼으로써 북한이 망하게 되고 통일이 빨리 온다고 하여도 그 통일은 후유증과 비용이 훨씬 더 큰 통일이다. 우리가 원하는 통일은 남북한이 공존공영하면서 화해와 협력을 통해 점진적·평화적으로 이루어지는 통일이다. 그 통일만이 우리 민족 전체의 삶의 질을 한 단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북한경제를 회생시켜야 한다.
결국 우리는 오늘 작게 부담할 것이냐, 내일 더 크게 부담할 것이냐를 판단하여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도 이번의 식량차관은 바람직한 결정이다.
/조동호_KDI북한경제팀장
■원칙.절차부터 지켰어야
대다수의 국민과 북한 전문가들은 현 정부의 대북정책에 대해 총론에는 수긍하면서도 각론에는 상당한 이견을 갖고있으며 심지어 우려를 나타내는 것도 사실이다.
수긍이라면 누구나 잘 알고 있듯, 어떻게 하든 한반도에서 남북한 공멸의 전쟁을 피하기 위해 북한을 궁지에 몰아 넣기보다는 달래서 다독거리는 편이 낫다는 것이고 이견과 우려는 그런 방법에 대한 회의에서 비롯된다.
최근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에서 60만톤의 대북식량지원 방안을 결정한 것도 그렇다. 비록 50만톤 차관, 10만톤 무상지원이라고는 하지만, 국민 세금으로 조성된 남북협력기금에서 막대한 경비를 지출하면서 국회 차원의 논의 한마디 없다면 앞으로 현 정부의 대북 정책관에 대해 심한 우려를 갖게 만든다. 이는 통일문제가 국가 존망과 직결되는 문제이지 정권 차원의 문제만은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아무리 번거롭고 어려움이 따르더라도 대북정책결정 과정에서는 최소한 여야 합의나 야의 묵인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과 전제조건에서 볼 때 그 동안 현 정부가 보여준 일련의 대북협상 자세는 많은 국민적 저항과 의구심을 갖게 한다. 여기서 의구심이라는 것은 정책 투명성과 관련된 것이다. 가령 지난번 남북정상회담때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순안비행장에서 백화원숙소까지 한시간여 동안 승용차에 동승하면서 나눈 밀담이나, 최근 제주도를 방문한 북한의 김일철 무력부장과 남한의 조성태 국방장관이 승용차 안에서 나눈 대화 등은 일반 국민에게는 그들이 탔던 검은 세단차와 같은 블랙박스로 남아있는 것이다.
이번 대북한식량지원만을 두고 보아도 그렇다. 물론 과거와 달리 60만톤 중 50만톤은 차관 형식으로 지원키로 한 것은 뜻있는 일이지만, 이미 이틀 전에 남북실무회담에서 식량지원합의서를 작성해놓고도 곧바로 발표하지 않고 숨긴 것은 납득하기 힘들다.
대통령중심제의 정치체제일지라도 남북문제의 결과는 정권의 사활이 아니라, 국가와 민족의 운명이 걸려있기 때문에 절대 독단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다. 남북정상회담때 김정일 위원장이 "북남통일은 내 맘먹기에 달렸다"고 한 발언은 매우 위험하고 무서운 의미를 갖고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남북문제에서 합의성과 투명성이라는 기본전제와 함께 대북지원에 있어서도 이제부터는 잡은 물고기보다는 낚싯대를 사 줄 때가 됐다고 본다. 그들은 식량 부족의 원인을 한번도 농정실패나 구조적 결함이라고 시인하지 않고 항상 천재지변 탓으로만 돌리고있다.
6월말 평양 김일성대학의 학생들이 수업을 전폐하고 농사일에 동원돼 논에 물대기 작업을 하고있는 것을 목격했다는 동료 교수의 이야기를 들었다. 이들에게 식량지원은 밑 빠진 독에 쌀 붓기이다. 따라서 비료와 함께 관수용발전기, 농기계 등을 남한의 인력과 함께 대량으로 공급함으로써 대다수의 남북한 주민 접촉과 함께 평화통일의 촉매제 효과를 가져와야할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틀림없이 기계만 받고 사람은 필요없다고 할 것이고, 이 경우 우리가 단호하게 거절하는 것은 통일과업에 장기적으로 도움이 된다고 믿는다.
이러한 기본전제와 단호한 원칙이 없을 때 잘못하면 남북한 관계는 마치 어머니의 지나친 사랑으로 자식을 버리는 꼴과 같이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현 정부가 국내의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를 방치한 채 대북문제의 어떤 성과로 정권 강화나 연장에 승부수를 건다면 극히 위험하다. 또한 남북문제에서도 조그마한 각론에서의 실수가 총론까지 망칠 수도 있다는 사실에 함상 유념해야할 것이다.
/ 김동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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