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인지하는 인간의 관념은 시대와 장소에 따라 달랐다.기원전 그리스인들은 지중해와 주변부를 세계의 전부로 생각했고, 옛날 폴리네시아인들은 태평양 군도 밖의 세계를 상상하지 못했다. 인류의 세계관이 전 지구차원으로 확장된 시점은 긴 인류사에서 보면 최근의 일이다. 16세기 아메리카 신대륙이 발견됨으로써 수천년간 쪼개져 있던 세계관의 퍼즐조각이 비로소 하나로 꿰어 맞춰지는 것이다.
■세계관의 오랜 변천사 만큼이나 인류의 ‘세계화’ 역사도 길다. 세계화(globalization)란 말이 탄생한 것은 불과 몇십년 밖에 안되지만, 현상으로서의 세계화는 장구하다. 직립원인(homo erectus)들의 ‘아프리카 탈출’을 그 출발점으로 해석하는 학자들도 있고 보면 세계화는 최소 50만년의 역사를 갖고 있는 셈이다. 고대의 인도양 해상교통로 개척, 유라시아의 실크로드 연결 등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세계화의 발자취다.
■세계화의 과거사가 줄곧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거꾸로 역진했던 시기도 있었다. 로마 멸망과 함께 ‘팍스 로마’에 의한 세계화가 무너지면서 이후 수백년간 전유럽이 암흑 세계에 갇힌 것이 한 예다. 통신·교역의 발달로 근대적 의미에서 세계화의 뚜껑이 활짝 열렸던 19세기말~20세기초 지구촌은 세계대전과 대불황으로 다시 폐쇄사회로 회귀하고 말았다. 당시 세계 교역량이나 해외 이민자 숫자의 격감이 이를 웅변한다.
■오늘날 지구촌은 다시 세계화의 빠른 확장 주기(週期)에 있다. 신자유주의로 이론무장한 작금의 세계화는 빈부 양극화 등 새로운 문제점들을 양산하고 있다. 그래서 ‘제3의 길’이라는 대안도 제시됐지만 본고장 영국에서 마저 무기력한 모습이다. 그렇지만 세계화 물결만큼이나 반세계화 운동도 폭발적이다. 최근 체코 프라하에서 열렸던 국제통화기금(IMF)·세계은행(IBRD) 연차총회가 세계화반대 시위로 조기 폐막했다. 이런 기세라면 다음번 세계화 관련 국제회의는 아예 열리지도 못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송태권 논설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