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 서울국제문학포럼' 참가차 방한한 프랑스의 세계적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70)와 이 포럼 조직위원장인 문학평론가 김우창(63) 고려대 교수가 27일 저녁 대담을 가졌다. 두 시간 가량 이어진 대담 내용을 소개한다.김우창:
우선 세계화 문제로 얘기를 시작하지요. 선생님은 세계화라고 불리는 현상에 대해 깊은 우려를 합니다.
이미 여러 자리에서 세계화에 대한 선생님의 입장을 천명하신 터라 새삼스러울 수도 있겠지만, 한국일보 독자를 위해 마련된 이 자리에서 세계화를 선생님이 어떻게 이해하고 왜 그 세계화 과정에 대해서 강하게 반대하는지를 말씀해 주시죠.
부르디외:
제 생각에 세계화의 개념은 서술적인 동시에 규범적입니다. 그것은 기술적 요인들이 선호하는 경제 영역의 통합 과정을 의미하기도 하고, 이 통합에 대한 장애물을 철폐하려는 정책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정치적으로 힘이 세고 부유한 나라들은 자유화의 이름으로 세계무역기구나 국제통화기금 같은 국제 기구를 통해 가난한 나라들에게 여러가지 법률적 제약을 가하고, 그것은 부유한 나라와 가난한 나라의 차이를 더 벌여놓을 것입니다.
또 이 세계화는 지역 공동체와 인간적 가치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국제 기구들이 비밀주의를 견지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 기구들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사람들은 알 수가 없어요. 정책 결정이 익명으로 이뤄지는 거에요.
김우창:
저 역시 세계화의 파괴적 측면에 주목해 왔습니다. 세계화가 인간의 가치있는 부분을 파괴하고 있다는 것, 세계화의 정도가 커질수록, 국제 기구들의 비밀주의가 커질수록, 그 파괴의 강도가 커질 것이라는 데에 동의합니다.
그런데 이런 관점도 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이미 파괴돼버린 사회, 예컨대 식민지사회를 생각해 봅시다. 유럽에서라면, 우리는 노동조합을 지켜내야 한다, 우리는 지역의 자율성을 지켜내야 한다, 우리는 지식인운동이나 사회운동을 지켜내야 한다, 라고 말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만약에 선생님이 이미 모든 것이 파괴된 사회에 살고 있다면…. 자, 여기서는 지켜내야 할 것이 아무것도 없어요.
노동조합도, 지역 자치권도, 사회운동도. 이럴 경우에 선생님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이것이 세계의 많은 나라의 실제 상황일 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역설적으로 일부 가난한 나라들에서 세계화가 일정한 호응을 얻고 있는 상황을 설명해준다고 생각합니다.
부르디외:
선생님의 말씀은 이해합니다. 그런 관점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은 알겠습니다. 그러나 이른바 자유화의 과정이라는 것은, 예컨대 아프리카 국가에서, 그나마 남아있는 공동체 조직을 파괴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국가자본의 사유화를 의미합니다. 그 국가자본의 사유화는 빈약하게라도 남아 있는 사회적 안전장치를 위태롭게 만드는 거지요.
더구나 세계화는 사유화라는 것이 좋은 것이라는 선전을 해댑니다. 모든 것이 사유화하는 동안에 국가의 빚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공동체에 대한 배려가 거기에는 없어요.
김우창:
이런 얘기가 되겠군요. 우선 가난한 제3세계 나라들은 커다란 제국주의적 또는 자유주의적 세력의 도움이 없이 발전을 이룩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러나 동시에 대부분의 국가는 경제 발전의 속도를 높이기를 바란다….
그런데 서구의 전략은 이미 이루어진 사회적 업적을 지키자는 것입니다. 반면에 제3세계는 그것을 새로 만들어야 합니다. 그래서 방어적일 수만은 없습니다.
기대의 수준이 높아진 탓도 있습니다. 예컨대 한국인은 수천년 동안 에어컨 없이 살았지만, 이젠 점점 에어컨을 더 원해가고 있습니다. 한국인이든 알제리인이든 다른 제3세계 사람들이든, 자신들이 전근대 사회에서도 훌륭히 살 수도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그러나 한 번 높아진 기대 수준은 다시 내려가기가 힘들죠. 그렇다면 가난한 나라 사람들에겐 두 가지 숙제가 주어지는군요. 외국에서 흘러오는 자본을 막는 것, 그리고 자신들의 기대 수준이 높아지는 것을 막는 것 말이에요.
부르디외:
그렇죠. 그런데 거기서 세계화의 또다른 파괴적 측면이 나타납니다. 민족주의의 발흥이죠. 수세적인.
김우창:
그 민족주의가 선생님의 입장은 아니지요.
부르디외:
그렇습니다. 민족주의적 태도는 부정적이죠. 그것은 파시즘으로 쉽게 다가갈 수 있고요. 또 그것은 권위주의적 정치가들에 의해서 이용될 수도 있어요.
말레이지아에서 그랬듯이요. 그래서 저는 국제주의를 옹호합니다. 지식인들의 집단적 저항이 필요한 거죠. 사회운동과 연대하는. 예컨대 노동조합과 지식인이 연대하는.
김우창:
요컨대 이런 정식이 가능하겠군요. 세계화는 나쁜 얼굴을 지닌 국제주의다, 그런데 선생님은 인간의 얼굴을 지닌 국제주의를 원한다, 이런 것입니까?
부르디외:
그렇습니다.
김우창:
유럽연합에는 유럽사회헌장이라는 것이 있지요. 최빈자의 하한을 규정하는. 그런데 제가 최근에 베를린에서 국제노동기구와 독일 노동조합에 간여하는 분 얘기를 들었는데, 그들은 그 사회헌장을 세계적 수준으로 확대하려고 한다더군요.
부르디외:
그러나 실제로 일어난 일은 아무 것도 없어요. 사회헌장이라는 것도 있고, 프로젝트들도 수없이 많죠. 그런데 실제로는 아무런 개선도 없습니다. 유럽연합이라는 것은 일종의 거대기업의 연합과도 같아요.
그 거대기업 연합의 로비가 유럽연합을 마비시키고 있어요. 이들은 대단히 꾀가 많고 각종 문화자본으로 무장하고 있지요.
그들은 대단히 바지런합니다. 그들은 유능한 사회학자이기도 하고 유능한 심리학자이기도 합니다. 게다가 유럽연합의 집행부는 관료주의에 깊이 물들어 있고요.
김우창:
문화자본으로 무장한 기득권 세력에게 선생님은 대항문화적 저항을 하고 있는 셈입니다. 이런 문화적 저항에 함께 어깨를 겯자고 선생님이 신문광고를 통해 프랑스 국내외 지식인들에게 호소하는 것을 최근에 읽었습니다. 이와 관련해 무슨 구체적 계획이 있으세요?
부르디외:
귄터 그라스나 하버마스는 제 취지에 동의하는 사람들입니다. 하버마스는 최근 한 성명서에 서명하는 것을 거부했습니다만. 그러나 그것은 성명서 작성에 충분한 참여 기회를 갖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젊은 지식인들도 많이 호응을 합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지식인들이 집단적으로 사회운동에 개입하는 거죠. 예컨대 노동조합과 연대하는 겁니다.
김우창:
그걸 위해 어떤 조직을 가지고 있습니까? 그리고 자금은?
부르디외:
중앙집권적 조직에는 반대합니다. 무정부주의적 조직 같은 탈중앙집권적 모임들을 생각합니다. 돈은 우리 주머니에서 냅니다. 또 소로스 같은 사람에게도 호소합니다.
김우창:
호기심에서 여쭙는 말씀입니다만, 선생님의 글은 꽤 난해합니다. 그런데 선생님은 세계화에 반대하기 위해 많은 사람들을 결집시키려고 합니다.
특히 노동조합과의 연대를 강조합니다. 그런데 노동자를 포함한 일반인들과 선생님 사이에 커뮤니케이션의 어려움은 혹시 없습니까?
부르디외:
그렇지 않습니다. 저는 최근에도 한 노동조합에 초대돼 어느 노조 지도자와 토론을 했는데, 그 여자분과 의사 소통에 전혀 지장이 없었습니다. 그것은 체험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김우창:
한 지식인은 어떤 식으로 비판적 지식인이 됩니까? 테크노스트럭처나 관료주의에 포섭되지 않은 지식인 말입니다.
부르디외:
제 경우엔 사회학을 공부한 것이 그 이유인 것 같습니다. 사회학자는 그 직업의 본질상 사회에 개입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늘 정치의식을 지니고 있어야 하는 것이 사회학자라는 직업이지요.
김우창:
막스 베버도 사회학자였지만 꽤 보수적이었고, 탤코트 파슨스도 사회학자지만 그의 기능주의는 아주 보수적입니다. 그러니까 사회학이 한 지식인을 비판적으로 만드는 것은 아니지요.
부르디외:
선생님 말씀이 옳습니다. 그보다는 어떤 학문적 전통에 속하게 됐느냐가 문제겠지요. 그러나 저는 과학적 기율을 충분히 지키는 사회학자라면 비판적이 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에는 또 개인적 차원도 개재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프랑스 남부의 베아른이라는 시골에서 나서 자랐는데, 그 곳의 민중적 기질에 영향을 받은 것 같습니다. 또 현장에서 사람들을 마주 대하면서 일하는 경험도 중요합니다.
저는 알제리에서 필드워크를 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고 알제리 사람들을 존경하게 되었습니다.
사진설명:
피에르 부르디외(오른쪽)가 김우창 교수와 세계화의 문제점과 지식인의 역할 등에 대해 대담하고 있다.
/최흥수기자
▩피에르 부르디외 약력
▦1930년 프랑스 남서부 베아른 출생
▦파리고등사범학교 졸업
▦현재 콜레주 드 프랑스 교수
▦저서 '국가 귀족' '재생산' '예술의 규율' '맞불' 등
▩김우창 약력
▦1937년 전남 함평 출생
▦하버드대 문학박사
▦현재 고려대 영문과 교수
▦저서 '궁핍한 시대의 시인' '지상의 척도' '시인의 보석' '정치와 삶의 세계' 등
정리 = 고종석 편집위원
aromach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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