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 양옆으로 즐비한 동물들의 뼈. 만지면 바스러질 것 같은 나무와 풀. 정수리로 내리 꽂히는 태양. 그리고 그 태양 아래서 말라죽어 가는 사람들. 아프리카 케냐와 소말리아 국경지대, 5년 가뭄의 현장이다.지난 주 나는 아프리카에 있었다. 중국에서 어학연수가 끝나는 대로 난민촌 등 긴급구호현장에서 일할 생각인데, 이번에 월드비전 창립 50주년 행사의 하나로 케냐 사업장을 돌아볼 기회를 갖게 되었다. '사랑의 빵' '기아체험 24시간'으로 널리 알려진 월드비전은 한국 전쟁 중 고아와 미망인을 돕기 위해 만들어진 국제 NGO다. 한국 월드비전은 현재 22개국에서 활발한 긴급구호 및 개발사업을 벌이고 있는데 케냐도 우리가 도움을 주는 나라다.
사업장은 나이로비에서 경비행기로 2시간 반, 케냐에서도 제일 낙후한 곳 중의 하나인 와지르 지역에 있다. 32만명 주민 대부분이 소말리아인이고 이슬람교를 믿는 유목민이다. 여기는 수년간 엘니뇨 현상으로 비가 오지 않아 이미 사막화한 곳으로 한국 월드비전과 한국 국제협력단 (KOICA)이 1995년부터 긴급구호사업을 벌이고 있다.
가도가도 메마르고 척박한 땅은 끝이 없고 집들은 텅텅 비어있었다. 가끔씩 땡볕 아래서 여자들이 플라스틱 물통을 산처럼 쌓아놓고 앉아있는 것이 보였다. 저렇게 며칠씩 무작정 물차가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거란다.
우리가 찾아간 마을은 월드비전이 저장용 물탱크를 만들어준 소말리아 접경지역이다. 이곳은 물탱크 덕분에 하루에 일인당 5리터의 식수를 배급받는 곳으로 이 부근에서는 제일 사정이 나은 곳이라고 한다. 그러나 내 눈에는 여기도 생지옥이기는 마찬가지다.
기르던 가축은 이미 오래 전에 말라죽었다. 식량과 바꿀 가축이 없으니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려있고 말라리아, 설사 등 간단한 병도 이기지 못한다.
먹을 물도 부족하니 제대로 씻지 못하는 것은 뻔한 일. 더러운 손으로 눈을 만져서 마을 사람들의 반 이상이 심한 눈병에 걸려있는데 이들 중의 대부분이 결국에는 장님이 된단다. 나무 밑에 멍하니 앉아 있는 한 여자는 눈병이 뇌신경을 건드려 정신병자가 되었는데, 품에 안고 있는 애기는 입에 거품을 문 채 가쁜 숨을 내쉬며 가늘게 목숨을 이어가고 있었다.
이 모두가 물 때문이다. 그 흔하디 흔한 물이 없어서 사람이 이렇게 꼼짝없이 죽어가다니. 기가 막힌 일이다. 너무나 억울하고 분한 일이다. 사업장 책임자의 말에 따르면 이들 한 명에게 최소한의 식량과 물과 의약품을 공급하는데 드는 비용이 한 달에 겨우 1.5달러, 2,000원 남짓 라는데 말이다.
물론 케냐정부에 돈과 인력이 충분하다면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나라의 국민총생산(GNP)는 330달러(우리나라는 약 1만 달러), 자력으로 재난민을 살릴 능력이 없다. 바로 이런 곳에서 국경을 초월한 국제 NGO의 활동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이 지역에서처럼 식수와 운반 트럭은 정부가 제공하고, 기름 값과 그 외 인건비는 월드비전이 부담해야만 일주일에 한번씩이라도 물을 공급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러나 NGO 역시 돈과 인력이 있어야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2,000원이 한국에서는 라면 한 그릇이 되고 커피 한 잔이 될 것이다. 그러나 이 돈이 아프리카에서는 그대로 식수가 되고 옥수수가 되고 안약이 된다. 그야말로 벼랑에 떨어져 겨우 손끝만 걸친 사람들을 끌어올리는 생명줄이 된다.
지난 주, 나는 케냐의 오지에서 물이 없어 죽어 가는 사람들을 보았다. 그러나 한국에서 보낸 관심과 성금이 그들을 살려내고 있는 것도 내 눈으로 똑똑히 보았다. 우리, 더 이상 무엇을 망설일 것인가.
여행가 한비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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