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문제를 소재로 다루는데 소극적인 한국문학에서, 돈과 경제가 삶과 예술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주제를 천착해온 김준성(80)씨는 독특한 작가다.그런 김씨가 이번에는 돈이나 경제를 전혀 다루지 않은 작품을 썼다. 최근 발표한 중편 '비둘기 역설(逆說)' ('문학사상' 9월호) 은 비둘기를 통해 잠시 만났다가 헤어지는 작가 (소설가) 와 교수 (화가) 의 짧은 사랑 이야기이다.
그러나 이 작품을 자세히 읽어보면 '돈과 경제의 맹목적 추구가 초래하는 인간성 상실에 대한 반성과 문명비판' 이라는 김씨의 주제가 사라진 것이 아니라, 사실은 보다 더 세련된 예술적 기법을 통해 효과적으로 제시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작품의 주요 모티프인 비둘기는 아직도 인간을 떠나지 않고 도시의 아파트에 남아 사라진 평화와 자연을 연상시켜 주는 동반자들이다.
인간은 왜 그들을 전서구 (傳書鳩) 로 이용했으며, 또 그들에게서 평화의 상징을 찾았을까? 그러나 자신들도 새장 같은 좁은 공간에 갇혀 사는 아파트의 주민들은 단지 주거환경을 더럽힌다는 이유로 비둘기들을 미워하고 불임제까지 투여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비둘기를 위한 평화의 모임' 이라는 역설적 이름 아래 모인 그들은 인간 교류에 실패하고 인간성을 상실한 현대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거기 반해 몰래 비둘기들에게 모이를 주고 비둘기를 소재로 소설을 쓰며 그림을 그리는 남녀 주인공은 비둘기를 통해 은밀히 교류하고, 아파트를 떠나 산을 찾으며, 서로를 이해한다.
비둘기마저 살 수 없어 우리를 떠나는 날, 돈과 경제만을 추구하다가 인간성을 상실한 인류문명은 파멸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작가와 화가의 짧은 사랑은 그러한 경고를 깨달은 사람들의 상호이해와 교류를 의미하는 상징적 행위가 된다.
비록 부치지는 못하지만 작가가 외국으로 떠난 화가에게 계속 편지를 쓰는 한, 그리고 계속해서 화가가 비둘기를 그리는 한 인간성의 회복과 교류는 이어질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이 팔순이 넘어서도 문학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는 노작가 김씨의 숨은 뜻이자 우리에게 주는 삶의 지혜이다.
/김성곤 문학평론가ㆍ서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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